전두환의 업보, 전우원의 슬픔

입력
2023.03.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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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하지 않은 전두환 일가, 후손 ‘원죄의식’에 시달려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안은 사죄한 적이 없다. 12·12군사반란 및 5·18민주화운동의 살상, 막대한 추징금 미납 등에 관해 늘 뻔뻔했다. 그의 손자 전우원(27)씨가 최근 인스타그램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할아버지는 학살자” “사람들 피 위에 세워진 집안”이라 비난했다. ‘사죄’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 우원씨는 가정교육 내용을 공개했다. “할아버지를 민주주의의 영웅이라 가르치고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동 빨갱이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주입했다”는 것. 그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공평하고 소중한 것인데, 자신들의 삶은 소중한 줄 알면서 남들의 무고한 희생에 대해서 죄의식을 하루도 받지 않는 악마들”이라 했다. “나름 합리화해 보려고 했지만, 아는 게 많아질수록 그들이 범죄자라는 게 확실해진다”고도 말했다.

□ 전씨 일가는 922억 원의 추징금을 미납했다. 우원씨는 서울 연희동 전씨 자택에서 가정부 명의로 유학비를 송금받고, 경호원 이름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해 가족에게 양도하는 식으로 돈세탁을 한다고 폭로했다. 전씨 사망으로 현행법상 추징이 중단돼, 폭로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우원씨는 “저소득층인 것을 증명하면 페이팔로 100달러(13만 원가량)씩 보내겠다. 최소 몇백 명에게 간다”고 게시했다. 죄책감을 줄이려는 행동이다.

□ 그의 아버지 전재용씨는 아들을 “아픈 상태”로 치부했다. 아픈 건 맞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유튜브 방송 중 마약 투약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우원씨의 질병과 자기파괴의 원인엔 ‘원죄의식’이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는 “저도 죄인이다”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고 했다. 사죄는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죄는 가해자와 그 가족에게서 ‘독성’을 빼는 일종의 ‘정화과정’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집안은 추징금을 모두 내고 부인(김옥숙)과 아들(노재헌)이 5·18 묘역을 찾아 사죄했다. 전씨 집안은 그 정화과정이 없었다.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