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노바야 가제타'의 위대한 투쟁

입력
2021.10.24 10:00
25면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언론인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수상은 더욱 뜻깊다. 무라토프가 소감에서 밝혔듯이, 이번 노벨상은 무라토프 개인에 대한 수상이라기보다는 '노바야 가제타'에 대한 수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전 소련-러시아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국제적 명성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에 반하여, 무라토프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1975년도 수상자인 사하로프 박사는 핵물리학자로서 국제적 권위가 있었던 분이면서 동시에 소련 인권운동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했다. 1990년도 수상자인 고르바초프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냉전의 종식을 가져온 분이었으니,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누가 그를 몰랐겠는가. 반면에 무라토프는 우리에게는 실로 생소한 인물이다. '노바야 가제타'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바야 가제타'는 공식적으로는 1993년 설립되었지만, 그 뿌리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통해 소련 체제를 개혁하려 했는데, 개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동시에 실행했다. 글라스노스트는 흔히 개방이라고 번역되지만, 그 내용으로 보건대 공개에 더 가깝다. 그간 감추어왔던 소련 시기의 여러 비극적 사실들과 소련 체제의 문제점을 공개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1987년 무라토프는 소비에트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신문에 합류하면서 소련의 진실을 밝히는 데 일조하였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연방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자 무라토프는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에서 떨어져 나와 '노바야 가제타'를 설립하였다. 그는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가 탐사보도 매체의 성격을 유지하기를 원했으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일군의 동료들과 함께 독립 매체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노바야 가제타'는 재정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기자들이 다른 곳에서 번 돈을 거꾸로 신문사에 집어넣어야 했다. 2000년대 들어서서 재정적 문제는 고르바초프와 러시아 은행가 레베데프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이때부터는 푸틴 정권하에서의 독립 언론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에 직면해야 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탐사보도 매체를 표방하는 만큼, 다른 언론매체들이 감히 다루지 못하는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어왔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체첸전에서의 인권 유린, 2014년 말레이시아항공 17편 격추 사건, 2015년 야권 지도자 넴초프 암살, 2016년 조세회피를 위한 역외 회사 관련 정보를 담은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폭로, 2018년 러시아 청부살인 배후세력, 2018~2019년 러시아 교도소 수감자 가학행위, 2019년 시리아 내 러시아 용병 관련 사건, 2017, 2019, 2021년 체첸에서 벌어진 동성애자 고문 및 처형 등을 다루었다.

푸틴 정권과 국가 권력에 관련된 비리를 폭로하는 만큼, '노바야 가제타' 기자들은 문자 그대로 목숨을 내놓고 활동해야 했다. 그간 체첸전을 다루었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를 위시하여 모두 6명의 기자들이 암살당했다. 신체적 공격이나 암살 위협을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장례식 화환과 목이 잘린 염소 머리통을 선물로 받는 것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섬뜩한 장면이다. 폴리트코프스카야도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받았기에 죽기 전에 유언을 미리 써놓았다고 한다. 이렇듯 '노바야 가제타'가 독립 언론 매체로서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대가는 끔찍했다. 이번 노벨 평화상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굴하지 않는 자세로 언론의 자유를 추구한 모든 러시아 기자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