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단서는 금반지와 발자국

입력
2016.05.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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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ㆍ현장서 지문 안 나와

장물ㆍ족적 수사에 희망 걸어

장기미제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 유력한 증거가 없어서다. 범인이 머리가 좋아 수사를 앞서 가거나 혐의를 모조리 감춘 완전 범죄는 거의 드물다. 광주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이 맡고 있는 사건 중 80%도 범인을 뒤쫓을 실마리가 전무한 경우다.

물론 시간이 흘러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미세한 증거가 효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2013년 5월 13년 간 미제로 남아있던 서울 대림동 커피숍 여주인 살해사건의 진범이 잡혔다. 2000년 사건 발생 당시 단서는 물컵에서 발견된 쪽지문 8점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지문 감정이 불가능했으나 지문감식 기술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범인 고모(43)씨의 흔적을 뒤쫓아 검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쪽지문은커녕 유전자정보(DNA)조차 남아있지 않은 광주 대인동 살인 같은 사건이다. 범인이 사용한 장도리와 범행 현장에서는 아무런 지문이 나오지 않았고, 식당도 현재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다. 요즘처럼 폐쇄회로(CC)TV나 블랙박스가 보급된 시절도 아니어서 목격자를 찾아내기도 어려웠다.

미제팀은 전통적 탐문수사 기법인 장물 및 족적(발자국) 수사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다. 범인이 피해자에게서 가져간 금반지와 금시곗줄의 모양은 특이했다. 24K 금반지는 한 가운데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좌우에 용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금시곗줄도 흔치는 않은 제품이었다. 수사팀은 누군가 아직 최씨의 반지를 갖고 있다면 역추적해 최초의 장물 판매자를 찾을 계획이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 족적을 토대로 비슷한 신발을 갖고 있는 사람을 계속 수소문하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희망일 뿐이다. 반지가 장물로 나왔다는 보장도 없고, 이미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변형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사들은 그야말로 도를 닦는 심정으로 사건을 쫓고 있다. 김창용 형사는 “수사가 벽에 부딪히면 차라리 점쟁이한테 물어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면서도 “이 정도 증거라도 남아 있으니 계속 두드리면 언젠가 길이 열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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