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하잰마씸?] 비행기 값만 300만원… 그래도 물질이 좋다

입력
2017.08.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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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제주 한수풀 해녀학교에서 물질 수업에 참여한 입문반 수강생이 잠수 도중 수중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수강생 김래향씨 제공
지난 19일 오후 제주 한수풀 해녀학교에서 물질 수업에 참여한 입문반 수강생이 잠수 도중 수중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수강생 김래향씨 제공

지난 19일 오후 2시,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앞바다. 협재, 곽지 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관광 명소다. 하지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인생의 터닝포인트이기도 하다.

‘해녀’라고 보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 20대 여성이 테왁(해녀의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을 가슴에 안은 채 망설임 없이 바다로 밀고 들어갔다. 제주 한수풀 해녀학교 입문반 10기의 마지막 수업시간. 최연소 수강생 이주혜(27)씨는 원래 물에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4개월간 현역 해녀 ‘삼촌’(높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제주도 방언)에게 특훈을 받아 물속이 내 집 안방처럼 편해졌다.

다른 수강생과 물질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여유도 생겼다. 이날도 바다 위에서 난데없는 토론이 벌어졌다. 이씨와 다른 수강생들이 동동 떠다니며 “발로 물을 차서 동력을 만들어야지”, “물속에서 머리를 안 드는 게 제일 중요해요” 갑론을박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현역 해녀 삼촌이 간단하게 정리했다. “몸을 기역자로 들어갑서 봅서.”

입문반 수업은 50여명의 수강생을 4가지 등급(상ㆍ중ㆍ하ㆍ애기군)으로 나눠 진행한다. 잠수는커녕 수영조차 해본 적 없는 수강생은 최저 등급인 애기군이 된다. 이씨도 애기군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잠수 때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는 납을 4개에서 3개로 줄일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이제야 소라 따는 맛을 좀 알겠는데, 26일 졸업식을 맞았다.

마지막 수업이 아쉬워 이날 이씨는 다른 수강생들이 물 밖으로 나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물고기를 쫓아다녔다. 34년간 물질을 해온 해녀학교 선생님 김미경(58)씨는 이런 이씨가 기특하다. 김씨는 “요즘엔 젊은이들도 해녀학교를 많이 찾는데, 처음엔 잘 못하더니 이제 물질뿐 아니라 말까지도 척척 알아듣고 곧잘 따라 한다”며 웃었다.

오후 4시쯤 하나둘 뭍으로 나온 수강생들이 망사리(그물망)에 담긴 소라와 성게를 자랑했다. 잡아봐야 2~3개 정도고 속도 실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채취하는 손맛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단다. 6~8월까지는 금채기(채취 금지 기간)라 잡은 소라는 다시 바다에 놓아줬다.

마지막 수업인 만큼 한 수강생이 수중촬영 카메라를 들고 왔다. 이씨는 바다 밑바닥에 있는 해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마지막 수업을 기념했다. 이들은 26일 졸업식과 함께 진행된 바당축제에서 맥주파티를 즐기며 인연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해녀학교는 2008년 출범했다. 졸업생만 500여명이다.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오가는 직장인, 물질을 생업으로 삼으려는 다문화 가정 이주자,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는 청년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림 2 해녀학교의 물질 수업은 조별로 나눠 진행한다. 실력별로 상 중 하 애기군 등으로 나누고 현역 해녀 할망의 지도에 따라 한 명씩 잠수 실습을 한다. 수강생 김래향씨 제공
그림 2 해녀학교의 물질 수업은 조별로 나눠 진행한다. 실력별로 상 중 하 애기군 등으로 나누고 현역 해녀 할망의 지도에 따라 한 명씩 잠수 실습을 한다. 수강생 김래향씨 제공

일산에서 제주로… 해녀학교를 찾는 이유

‘해녀’학교지만 ‘육지 남자’도 많다. 일산에 사는 유주형(51)씨는 한 대학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는 28년 차 직장인이다. 환자 보호자가 원무 창구에 화를 풀고 가면, 감당해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공허해진다. 은퇴 후 제주도 생활을 꿈꾸는 그는 입학이 확정되자 300만원을 들여 4개월 치 항공권을 끊었다. 막내아들의 대학 입학이 목전이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있는 터라 아내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입학 전 예습도 철저하게 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사우나에 들러 잠수 연습을 했다. 목표는 2분 이상 잠수하기. 해녀학교에 입학한 후 혼자 한 연습이 빛을 발했다. 현재 유씨는 물속에서 평균 3분 이상 숨을 참는다. 그는 “물속에 들어가면 밖에 있는 것보다 더 평온해지는 게 마치 어머니 품 안에 있는 것 같다”며 “10년 뒤 내가 은퇴하면 ‘해남’이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제주대 소아외과 전문의 정규환(44)씨는 지난해 제주에 내려와 근무를 시작하면서 해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엔 아내의 추천으로 시작했지만, 해녀 문화의 보존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정씨는 “매년 해녀 몇 분이 심장마비나, 조류에 휩쓸려서 물속에서 돌아가신다”며 “해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그러려면 먼저 해녀를 알아야겠더라”고 말했다.

물질을 배우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늘 육지에서 바다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이제 바다 밑에서 물 위를 올려다본다. “예전에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을 보면 바닷속에 빛이 쫙 들어오잖아요. 그 모습이 현실이 돼요. 눈앞에 반짝반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또 하나의 워터월드가 열리죠.”

맹모, 아니 ‘해녀삼천지교’도 있다. 부산에 살았던 황미경(48)씨는 지난해 해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지자, 아예 주소지를 제주로 옮겼다. 그는 제주에 직장과 집을 구하고 아들까지 제주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쉽지 않았다. 수업 한 달이 넘도록 잠수가 안 되자 황씨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괜히 시작했나’, ‘주소지는 왜 옮겼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해녀 삼촌은 끈기 있게 황씨를 북돋웠다. “이 늙은 할망(할머니)도 했수다.” “왜 안됐습과 함수게.” 7월 중순쯤 황씨의 손이 바다 밑 바위에 닿았을 때, 그는 “이제 껍데기가 아닌 진짜 제주도민이 됐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하면 된다’는 말, 진부한데 우리 모두 잊고 살잖아요. 그런데 정말 하니까 되더라고요. 살면서 힘들 때 ‘하면 된다’는 해녀 삼촌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요.”

해녀학교 수강생들이 테왁(뒤웅박)에 의지해 헤엄치고 있다. 이소라 기자
해녀학교 수강생들이 테왁(뒤웅박)에 의지해 헤엄치고 있다. 이소라 기자

숨 참고 물살 헤치며 얻는 수확의 기쁨

어떤 이들은 스킨스쿠버 장비가 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말한다. 현대 장비를 활용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더 많은 해산물을 수확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맨몸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 방식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만의 전통이다. 해녀들은 금채기를 지켜가며 자원을 유지하고, 어촌계마다 규율을 세우고 관계를 맺어가며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지난해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정규환씨는 “해녀는 인체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경제 활동”이라며 “미래에 큰 변화가 닥쳐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산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주형씨도 “바다 밑은 해녀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밭이고 이분들의 경제적 밑천”이라며 “지금의 60~70대 해녀 할망들이 돌아가시면 다음 세대 해녀 문화는 누가 이어나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해녀 문화를 알리고 제주의 자연을 지키고자 지난해부터 ‘숨’이라는 봉사모임을 만들었다. 졸업생끼리 모여 바다 밑에 가라앉은 쓰레기를 줍는 바다 정화 작업을 진행한다. 이주혜씨는 “졸업 후 주말이 허전하고 아쉬웠는데, 봉사활동을 통해 바다도 깨끗하게 가꾸고 수강생들과 인연도 이어가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해 졸업생 가운데 실제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1~3명에 불과하지만, 스킨스쿠버를 즐기듯 해녀학교를 찾았다가는 크게 당황할 수도 있다. 물질은 스포츠가 아니다. 숨을 참고 압력을 견디며 10~30m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한다. 금채기가 여름으로 설정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해녀는 보통 겨울에 해산물을 수확한다. 진입장벽도 높다. 각 어촌계의 규율에 따라 2~3년은 거주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짜 주민’이 돼야 하고, 해녀회에 가입한 후 물질 자격증인 해녀증을 취득해야 한다.

해녀 김미경씨는 “해녀는 참을성과 끈기가 필요하다. 오늘 못 건지면 내일 또 나가야 한다”며 “(육지 사람들은) 물질을 빨리 익히고 전입신고만 하면 해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준비 없이 오면 금방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녀학교의 최상훈(37) 사무장은 “패기로 해녀에 도전했다가 생각보다 높은 진입장벽에 포기해버리는 이들이 있다”며 “왜 해녀가 되고 싶은지, 돈과 시간을 들여서 무엇을 얻을지 충분히 고민한 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제주=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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