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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피해자들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라임펀드 환매 보상 촉구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를 빚은 라임자산운용(라임)의 사모펀드 중 일부는 가치가 반토막나거나 원금까지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라임과 신한금융투자가 부실 발생 사실을 은폐한 사기 혐의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의 대형 사고에 당국도 뒤늦은 개선안을 내놨지만, ‘반성 없는 뒷북 처방’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가치 반토막에 부실 은폐까지

라임은 14일 환매중단된 모(母)펀드의 기준 가격을 그간의 손실을 반영해 재조정한 결과, 이달 18일 기준으로 사모채권 중심의 ‘플루토 FI D-1호’(기존 가치 약 9,373억원) 순자산 가치는 작년 9월 말 대비 -49%, 전환사채(CB) 중심의 ‘테티스 2호’(기존 2,424억원)는 -30%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당초 1조원대 펀드였던 플루토 FI D-1은 가치가 반토막난 셈이다.

이번 환매중단 펀드는 소수의 모펀드에 다수 자(子)펀드가 연계된 ‘모자형 펀드’ 구조다. 자펀드 중 증권사와 총수익스와프(TRSㆍ증권사가 펀드 등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 계약을 맺어 차입(레버리지)을 일으킨 29개 자펀드 손실액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총 472억원 규모의 3개 자펀드(라임 AI스타 1.5Y 1ㆍ2ㆍ3호)는 잠정적으로 전액 손실이 예상됐다. 라임 측은 “현재로서는 고객의 납입자금이 전액 손실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전체 손실은 1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또 이날 금융감독원은 라임이 신한금융투자와 TRS 계약을 통해 투자한 ‘플루토 TF 펀드(일명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두 회사가 투자처(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의 부실 발생을 알고도 은폐하고 계속 판매했다는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모펀드(플루토FI D-1호, 테티스 2호)에도 운용 과정의 위법행위가 포착됐다. 금감원은 “라임의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적절한 내부통제장치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운용역인 이종필 부사장(CIO)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의해 위법행위가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여기에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등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환매중단 펀드는 우리은행(3,577억원), 신한금융투자(3,248억원), 신한은행(2,769억원), 대신증권(1,076억원) 등에서 많이 팔렸다. 향후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반성 없는 사모펀드 개선안

금융위원회는 이날 사모펀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2015년 모험자본 육성을 위한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발표한 지 5년 만의 대책이다. 개선안에는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일 경우 개방형펀드 설정을 금지하고 △복층 투자구조 펀드의 정보제공 및 감시를 강화하며 △TRS 계약 상대방의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이 담겼다.

금융위는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 시장 자체가 위축될까 우려했다. 김정각 자본시장정책관은 “일부 (제도가) 미흡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대부분 사모펀드는 취지에 맞게 운용되고 있으며 일부 펀드의 문제를 과거 제도개선(사모펀드 규제 완화) 탓으로 연결ㆍ확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라임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이 같은 당국의 해명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높다. 사태의 1차 원인은 라임에 있지만,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가 증권사와 사기 행각을 벌이기까지 당국의 감독이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점은 규제완화의 취지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금융당국이 관리감독 실패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라임 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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