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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종영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피아니스트 출신 북한 장교 리정혁(현빈 분)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tvN 제공

‘달빛(Clair de Luneㆍ1890년)’은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피아노곡으로 꼽힌다. 동시에 음악이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오선지의 음표가 미끄러지는 듯 오르내리는 글리산도 주법은 은은한 달무리를 닮았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장엄한 보름달이라면, 드뷔시의 달빛은 보다 몽롱한 초승달인 셈이다.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리정혁(현빈 분)이 어쩌면 그 초승달일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는 21.7%(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 16일 끝났다. 피날레를 장식한 건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드뷔시 달빛의 연주를 감상하던 윤세리(손예진)와 리정혁이었다. 분단 현실에서 남북을 오가며 힘겨운 사랑을 이어갔던 주인공들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윤세리는 우연히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가 출신이고, 리정혁은 윤세리를 지켜주는 북한 장교다. 리정혁은 의문사 당한 형을 대신해 군에 몸 담았지만 원래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 드라마엔 리정혁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등장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곡이 달빛이다. 리정혁은 직설적으로 사랑한다고 하기보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윤세리)에 데려다 주었다”는 대사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은은한 화법을 쓴다.

드뷔시의 달빛이 한국에서 유명해진 건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가 한 몫 했다.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한 조성진은 프랑스 계통 작곡가들 곡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앙코르 요청을 받을 때 달빛을 즐겨 연주했다.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는 “달빛은 다소 어려운 드뷔시 곡 중 가장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라며 “그가 표현하려 했던 인상주의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이란 점에서 음악사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리정혁이 스위스 어느 호숫가에서 형을 그리워하며 치는 또 다른 피아노곡도 달빛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드라마 OST인 ‘형을 위한 노래’(남혜승ㆍ박상희 작곡)는 오르골 멜로디를 연상시키는 아련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서로를 알기 전부터 윤세리와 리정혁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귀로 들려준다.

극중 다른 곡도 인상적이다. 리정혁의 약혼녀로 등장하는 서단(서지혜)은 첼리스트다. 서단은 짝사랑했던 리정혁을 그리워하며 택시 안에서 음악을 듣는데 그 곡은 에드바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16번이다. 노르웨이 출신답게 그리그는 쓸쓸함, 슬픔, 생명력, 희망을 차례로 들려주는데, 끝내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을 포기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서단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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