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코로나 취약 노동자

입력
2020.03.16 18:00
수정
2020.03.16 18: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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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콜센터 노동자 증언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콜센터 상담원들의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콜센터 노동자 증언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콜센터 상담원들의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는 요즘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직장을 쉬거나 그만두도록 강요당하는 이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감소를 이유로 무급휴가 사용 통보를 받은 학원강사, 사태 진정 후 복직을 전제로 권고사직을 강요당한 공항 직원 등 벼랑 끝으로 내몰린 5인 미만ᆞ무노조 업체 노동자나 파견ᆞ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지난주 이 단체의 상담 중 40%가 무급휴직, 임금삭감, 해고ㆍ권고사직 문제였다.

□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위기는 이들에게 먼저 닥친다. 하청업체에 속한 콜센터 상담원들은 마스크조차 쓰지 못한 채 일하다 코로나에 집단 감염됐다. 감염 상담원 중에는 주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출근 전 새벽에 녹즙 아르바이트를 하는 투잡족도 있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을 위협받지만 이런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치다. 한 취업 포털이 1,089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기업은 60.9%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36.8%에 그쳤다.

□ 감염병으로 닥친 경제 위기를 타개할 사회안전망도 이들에게는 성글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면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고, 건설노동자 같은 일용직들은 고용보험 자격일수(180일)를 채우기 어려워 고용유지지원금 신청도 어렵다.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특수고용직에게 실업급여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법정 휴업수당(평균임금 70%) 이하로 주는 사업장이 60%나 되니 노조가 없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 고용보험(실업급여)은 재정당국의 오랜 외면 속에 1995년 7월 가까스로 도입됐지만, 결국 외환위기에 따른 대량실업을 극복하는데 중추 역할을 했다. 1998년에만 시행령이 세 번 바뀌어 10인 미만이던 적용 범위가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이는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혁명적 확대’였다는 것이 당시 정책담당자(정병석 전 노동부 차관)의 회고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취약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대폭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하는 이유다. 가입이 불가능했거나 문턱이 높아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제도의 전향적 개선은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와 국회가 해결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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