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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자택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생일을 맞아 줄이 매달린 바구니를 이용해 친구들로부터 음료를 전달받고 있다. 암스테르담=AP 연합뉴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면 안 되나요?”

질병관리본부에서 마련한 ‘코로나19 관련 어린이 특집 브리핑’에서 나온 질문이다. 답변을 준비하던 어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김예진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어린이들에게 생일파티는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며 어린이들의 심정에 공감을 표한 후,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은 우리가 조심하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유행하지 않는 시기가 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공감을 표한 것처럼 어린이들에게 생일파티는 중요하다. 그리고 어린이들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이 둘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냈다.

며칠 전, 창밖에서 생일 축하 노랫소리가 들렸다. 평생을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살았지만, 창밖에서 들려오는 것은 처음이라 자연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노래의 출처를 찾았다. 마스크를 쓴 서너 명의 어린이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던 곳은 아파트 뒤편 후미진 곳으로 평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공간이다. 생일 축하와 사회적 거리 두기 사이에서, 아이들은 동네의 후미지고 버려진 장소를 찾아내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생일파티가 가능한 공간을 기어코 찾아냈고, 그곳에서 함께 했다. 하긴, 동네에 관한 한 전문가인 아이들은 이미 그 장소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동네를 재발견한 것은 아이들뿐만은 아니었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사람들은 자동차와 지하철을 타고 벚꽃이 피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진해 여좌천변에 400만명이, 서울 윤중로에 500만명이 모여 벚꽃과 사람을 구경했다. 올해는 거리 두기를 위해 전국의 유명 벚꽃길이 통제됐다. 벚꽃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사람들은 동네를 둘러보았다. 아파트 정원에도, 동네 놀이터에도, 버스정류장 옆 보도 위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벚꽃이 한창이던 때 사람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우리 동네에 벚꽃이 이렇게 많이 있었나?” 동네에서 잠만 자던 어른들의 눈에도 동네가 들어왔다.

먼 곳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동네 산책을 하며 장기전을 준비한다. 요즘 동네 공원에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래봤자 예전 유명 공원에 비하면 아주 적은 사람들이지만, 동네 꼬마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텅 비어 있던 공원을 사람들이 이제야 발견한 것처럼 발걸음을 한다. 그곳에서 시선을 위로 하면 벚꽃이 떨어진 자리를, 고개를 숙이면 제비꽃을, 무릎을 굽히면 봄까치꽃을, 코를 땅에 박으면 꽃마리를 만난다. 그 사이를 잽싸게 날아다니는 직박구리와 참새, 꽃들의 수정을 도우며 배를 채우고 있는 꿀벌과 꽃등애까지 보고 나면, 우리 동네에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네에 공원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람이 늘어난 것은 동네 공원만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님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우리 집 앞 슈퍼마켓이 요즘엔 장사하는 티가 난다. 이동을 최소화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다 보니 대형마트에 가기가 꺼려진다. 누구는 택배로 식료품을 주문하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식료품을 멀리 나가지 않고 사기에 동네 슈퍼만한 곳이 없다. 대형마트와의 경쟁에 뒤처진 후 좀처럼 옛 영화를 회복하지 못하던 동네 슈퍼는 요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아이들이 집에 있다 보니 삼시세끼를 다 차려내야 하는 가정의 밥 담당자들도 힘에 겹다. 언제든 배달과 포장이 가능한 동네 식당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고맙다. 난 오늘 낮에도 집에서 3분 거리의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치즈김밥이랑 돈가스 하나 포장이요.”

실제로 최근 4주간 10만명의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롯데카드에 따르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의 카드 결제가 크게 늘어났다. 집에서부터의 거리가 3㎞ 초과된 먼 거리에서의 카드 결제는 12.6%가 줄고 1~3㎞에서 9.1%가 줄어드는 동안, 500m~1㎞ 이내의 카드 결제는 0.4%가 증가했고, 500m 이내에는 8.0%가 증가했다. 동네에 가게가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미 동네에서 살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종이접기에 빠진 아이에게 색종이를 사주려 했지만, 우리 동네의 마지막 문방구는 작년에 문을 닫았다. 생각해보니 문방구가 문을 닫은 후 색종이를 사려면 차를 타고 대형마트를 갔었다. 못을 하나 살 때도, 양말을 살 때도, 반찬을 살 때도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나간 김에, 쇼핑카트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 곳곳에 집중화된 공간을 만들어 왔다. 동네는 점점 잠을 자는 공간으로 축소되었고, 쇼핑을, 여가를, 업무를 위해 집중된 공간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야 하고, 이동 거리와 시간을 줄여야 하는 시절, 우리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동네를 돌아보고, 동네에 의지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움직이려 한다. 재발견된 동네는 여전히 사람들과 가까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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