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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동지중해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국의 해상초계기에 러시아 전투기가 바짝 다가와 근접 비행을 하는 아찔한 사태가 발생했다. 위기일발 상황은 리비아 내전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 신경전 탓으로 알려졌다. 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가 리비아 내 군사기지를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 러시아가 리비아 내전에 전투기를 보냈다고 폭로한 뒤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오늘날 리비아 내전이 중동 역내 국가는 물론, 미국과 러시아 등 글로벌 강대국까지 연루되는 경쟁의 무대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리비아 내전에 다양한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1월 19일 베를린에서는 메르켈 독일 총리 주도로 리비아 평화를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관련국 정상들이 대부분 참여하여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데 합의하였지만 파예즈 알 사라즈 총리가 이끄는 리비아 통합정부(GNA)와 칼리파 하프타르가 주도하는 리비아 국민군(LNA) 간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터키 두 나라는 각각 LNA와 GNA를 지원하며 리비아 정세에 적극 관여하고 있어 향후 리비아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국가가 되고 있다. 칼리파 하프타르의 공세로 수세에 몰렸던 GNA는 터키군의 다각적인 지원에 힘입어 최근 트리폴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터키는 왜 러시아와의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리비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려 할까? 터키가 리비아 문제를 중시하는 이유는 동지중해의 에너지 자원 확보를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터키는 GNA와 양해각서를 체결함으로써 지중해 자원 탐사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GNA가 통제하는 리비아 서부를 지중해 자원 탐사 개발의 배후기지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터키 당국은 GNA로부터 시추 허가를 받은 뒤 동지중해 천연가스 탐사 및 시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더군다나 터키 정부는 ‘푸른 본향(Blue Homeland)’ 이라는 의미의 소위 ‘Mavi Vatan’ 전략을 추진하면서 해양 대국화에 나서고 있다. 2019년 3월 터키 해군이 실시한 대규모 군사훈련도 ‘Mavi Vatan-2019’ 로 명명되었다. 이 전략의 장기적 목표는 터키를 둘러싼 세 개의 바다인 에게해, 지중해, 흑해는 물론 홍해, 카스피해, 걸프 지역까지 터키 해군의 통제력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원대한 포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리비아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터키의 적극적 해양 진출에 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며 쪼그라든 현재 터키의 영토를 규정한 1923년 로잔조약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터키의 몸부림이라는 해석마저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리비아의 전략적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리비아에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보다는 민간 보안기업인 와그너 그룹(Wagner Group)을 통해 용병을 보내는 방식으로 내전에 개입해 왔다. 하지만 터키의 군사적 개입이 증가하면서 LNA가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러시아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아사드 정권이 승리했던 여세를 몰아 리비아에서도 자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창출하려 한다.

만일 칼리파 하프타르가 승리하게 된다면 러시아는 리비아에 새로운 군사기지를 갖게 될 공산이 크다. 현재 러시아는 시리아의 타르투스와 라타키아에 해군 기지를 갖고 있다. 리비아에 추가적으로 군사 기지가 건설된다면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견제하는 효과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는 동지중해의 자원 경쟁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도 리비아를 잃어 버리고 싶지 않다. 특히 유럽 국가로 다량의 가스를 수출하는 모스크바는 행여 터키와 같은 나라들이 동지중해로부터 가스를 자유롭게 획득하게 될까 염려한다. 이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자원 의존도를 줄이면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전략적 행보에 대하여 미국의 입장은 무엇일까? 2012년 9월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벵가지에서 피살된 이후 미국은 리비아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저해 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중동 문제에 대한 연루를 축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워싱턴의 정책결정자들은 리비아 내전을 주로 유럽 국가가 다루어야 할 문제로 인식한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유엔이 인정하고 있는 GNA를 지지하면서도 한때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칼리파 하프타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로서는 워싱턴이 리비아 내전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글로벌 각축전이 더욱 가열될 경우 뛰어들 가능성을 온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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