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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면 6ㆍ25 전쟁 70주년이 된다.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이 비극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는데 중국의 전략과 병법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백선엽 장군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김일성 군대의 역할은 초반 3개월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그들이 전쟁을 촉발해 이 땅에 커다란 비극을 불러들였죠. 그러나 숫자로 말하자면 북한군은 2입니다. 적의 역량 가운데 나머지 8은 중공군으로부터 왔습니다. 그 점에서 보면 우리는 60년 전, 해양을 상징하는 미국의 힘을 활용해 대륙으로부터 몰려든 중국을 막아낸 겁니다.…싸움터에서 지켜봤던 중공군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전략과 전술이 늘 흐르는 물과 같았습니다. 요즘의 중국도 마찬가집니다. 같은 공산주의를 해도 중국은 유연합니다. 왕조적이면서, 교조적이어서 백성을 굶게 하는 북한의 공산주의와는 다르죠. 중국은 거대한 나라입니다.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지요. 잘 연구하면서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2011.03. 중앙일보)

여기서 ‘중공군’이라는 말은 ‘중국공산당의 군대’를 줄인 말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를 줄인 말이 아니다. 원래 중국의 군대는 공산당의 군대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당의 군대이다. 따라서 ‘중공군’이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는 중국군과 싸운 셈이다. 한중 수교 이래 우호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 중국군과 싸웠다고 쓰지 않을 뿐이다.

6ㆍ25가 터지자 주저하는 측근들을 설득하고 참전을 밀어붙인 것은 모택동이었다. 게다가 한국전쟁, 중국 표현으로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돕다)’ 전쟁에서 모택동은 미군 폭격에 외아들을 잃었다. 유해는 평안남도 ‘중국인민지원군열사릉원’에 안장했다. 그래서인지 6‧25가 되면 중국과 모택동에 대하여 여러 생각이 든다.

지금도 북ㆍ중의 혈맹 관계는 여전하고 중국이 한국의 군사 동향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의 군사 전략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두어야 한다. 주지하듯 모택동은 모든 면에서 우세했던 장개석을 이기고 중국을 석권했다. 당연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남다른 비책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붓과 칼의 병용이다. 흔히들 모택동을 생각하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政權是由槍杆子中取得的, 1927.08.07. 中共中央회의 발언)’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모택동은 붓으로 사람 마음을 잡을 줄도 알았다. 특히 중국 전통 문인 취향의 시사(詩詞)를 창작해 정치에 활용하는데 능수였다.

여기서는 ‘심원춘ㆍ눈(沁園春ㆍ雪)’이라는 모택동의 사(詞)를 소개해 본다. 작품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단에서는 중국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찬미하고 있다. “북녘 풍광 천리에 얼음 뒤덮고 만리에 눈발 날린다. 바라보니 장성 안팎은 그저 망망한 흰 눈. 너른 황하의 물길도 삽시간 도도한 기세 잃었네. 산맥은 춤추는 은빛 뱀 같고 구릉은 내달리는 흰 코끼리 같은데 저마다 하늘과 키를 겨루려 하네. 하늘이 맑게 개게 되면 붉은 태양과 하얀 얼음 눈이 유난히도 아름다우리.(北國風光 千里冰封 萬里雪飄 望長城內外 惟餘莽莽 大河上下 頓失滔滔 山舞銀蛇 原馳蠟象 欲與天公試比高 須晴日 看紅裝素裹 分外妖嬈)”

두 번째 단락에서는 봉건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어서 더욱 애창된다. “강산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수많은 영웅 다투어 받들고 사랑하였네. 아쉽게도 진시황과 한무제는 문채가 조금 모자랐고 당태종과 송태조는 시문(詩文)이 미진하였으며 일세의 영웅 칭기즈칸은 활 당겨 사나운 새 쏠 줄만 알았네. 하나 이 모두 지나간 일, 정녕 풍류인물을 꼽으려거든 오히려 지금을 보아야 하리.(江山如此多嬌 引無數英雄競折腰 惜秦皇漢武 略輸文采 唐宗宋祖 稍遜風騷 一代天驕 成吉思汗 只識彎弓射大雕 俱往矣 數風流人物 還看今朝)”

‘심원춘ㆍ눈’의 발표 일시와 장소는 1945년 11월 중경(重慶)으로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이 그곳에서 협상 중이었다. 전 중국의 이목이 집중된 시점과 장소에서 모택동은 시 한 수로 허다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산당을 싫어하던 지식인들조차 모택동에게 매료당했고 ‘천고절창(千古絶唱)’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때의 모택동은 시대를 여는 애국자이자 고전 문학에도 밝은 격조 있는 시인이다.

그러나 모택동은 칼도 놓지 않았다. 그는 군사적 승리 없이 공산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았으며 실제로 자신이 최고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중 섬멸전(殲滅戰)에 대한 언설을 보자. “열 손가락을 부상시키는 것보다 한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고, 10개 사단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1개 사단을 섬멸시키는 것이 낫다.(傷其十指不如斷其一指, 擊潰其十個師不如殲滅其一個師)” ‘섬(殲)’은 누구 하나 없이 도륙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사람이 한 말인지 섬뜩하다. 중국이 만든 스텔스기 이름도 ‘섬’이다.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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