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청와대 인근에 있는 ‘청운광산’은 청년층 1인 가구들이 소유하지 않고 함께 공유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다 나은 주거 여건을 모색하는 시도다. 저마다 창이 다른 11개의 방으로 구성된 집의 입면은 벽과 창이 비슷한 비율로 차지한다. ©텍스처 온 텍스처

산과 하늘을 담는 통창, 햇살이 쏟아지는 천창, 세련된 카페 같은 주방. 서울 시내 한복판에 휴양지 리조트 부럽지 않은 주거 여건을 갖춘 1인 가구를 위한 집이 생겼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서울 종로구 궁정동 ‘청운광산’(대지면적 194.90㎡ㆍ연면적 312.49㎡)은 서울시가 보유한 토지를 사회적기업인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장기 임대해 주택으로 개발, 운영하는 사회 주택이다. 도시근로자 소득 70%(월 378만원) 이하로 주택과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1인 가구만 입주할 수 있다. 월세는 40만원(보증금 1,500만원)으로 인근 지역 원룸의 80%수준이다. 김민철 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는 “고시원이나 옥탑방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원룸만 해도 요리 한번 하면 난장판이 되고, 샤워하면 방 안 가득 습기가 차는 등 청년층 1인 가구의 주거 여건이 굉장히 열악하다”라며 “청운광산은 한 명으로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한 해법 중 한 가지”라고 소개했다.

청운광산의 2~4층에는 9개의 남향 방이 있다. 방의 크기와 마감재는 같지만 창의 위치와 형태가 모두 다르다. ©텍스처 온 텍스처
◇같은 방, 다른 창

지하1층~4층인 청운광산에는 1층 상업공간을 제외한 2~4층에 같은 크기(약 9.2㎡)의 방 11개가 있다. 11명의 입주자는 20~40대 여성들이다. 직장인과 학생, 예술가, 교사 등 하는 일은 각자 다르다. 올 1월에 입주한 설치미술 작가 오수현(28)씨는 “작품 활동에 따라 해외부터 지방까지 옮겨 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라며 “청운광산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혼자 있고 싶을 때 충분히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11개 방은 크기가 같지만 창의 형태와 위치가 제각각 이다. 한 면이 하나의 창 혹은 여러 개의 창으로 구성된다. 여러 면에 창이 나뉘고, 위치도 다르다. 서로 다른 창에 담기는 풍경도 어느 하나 같지 않다. 설계를 맡은 조윤희(구보건축사사무소 소장)ㆍ홍지학(충남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는 “건축 규정(건폐율 40%, 용적률 160%)을 맞추면서 최소 11개의 가구가 입주하려면 꽉 채운 박스 형태로 지어야 해 외관 디자인에 큰 변화를 주기 어려웠다”라며 “창의 변화를 통해 입주자들에게 다른 경험을 주고 외관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청운광산 2개의 북향 방은 콘크리트로 마감돼 있다. 건물 뒤편의 북악산이 창 너머로 보인다. ©텍스처 온 텍스처

11개 방 중 남향은 9개, 북향은 2개다. 창의 위치에 따라 내부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남향인 9개 방은 구조재인 독일산 나무가 그대로 드러난다. 창 너머 풍경과 함께 산속 오두막에 온 것처럼 아늑하다. 반면 콘크리트로 마감된 북향의 방은 세련되고 도회적이다. 하나의 집이지만 11개의 방은 저마다 특색이 있다. 선호도는 입주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3층 북향 방을 선택한 오수현씨는 “밝고 따뜻한 남향 방보다 살짝 어두워도 차가운 느낌의 방이 좋았다”라며 “창이 커서 북향이어도 햇빛이 충분히 들어와 식물도 기른다”고 말했다.

창의 형태에 따라 가구 배치도 다르다. 내부 가구 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 프레그먼트는 같은 소재와 디자인의 가구로 통일감을 주면서도 방마다 가구 구성을 달리했다. 가구를 좁은 방 안에 딱 맞춰 디자인한 덕분에 수납 공간은 넉넉하게 확보하고 자투리 공간은 최소화했다. 가구에 비용을 쓰기 부담스러운 1인 가구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디자인 가구를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다.

1층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계단을 통해 각자의 방으로 연결된다. 계단실에도 큰 창을 내어 밝고 환하다. ©텍스처 온 텍스처
◇홀로 또 같이 사는 집

청운광산은 홀로 또 같이 사는 집이다. 서로 다른 방은 독립된 공간이지만, 방을 제외한 현관부터 계단참, 통로, 화장실, 거실, 주방 등은 입주자들이 함께 쓴다. 건축가는 “청운광산은 혼자 누리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함께 나누면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라며 “개인 공간은 작지만 공용 공간으로 답답함을 해소하고 만족감을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현관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어두운 계단실과 통로를 지나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보통의 원룸과 달리 큰 창이 있는 여유로운 계단을 음미하듯 오른다. 계단 중간중간에는 창틀에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건축가는 “어둡고 긴 통로는 홀로 사는 이들에게는 공포다”라며 “시원하게 창을 내 환하면서도 시야를 바깥으로 돌려 계단이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한 단순한 방편이 아니라 집 내부에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각 층의 입주자들은 화장실을 공유한다. 층마다 4명의 입주자가 쓰는 두 개의 세면실과 두 개의 화장실, 하나의 욕실이 있다. 원룸처럼 방 안에 화장실을 갖추는 대신 화장실의 기능을 잘게 분리해 함께 쓰더라도 붐비지 않고 쾌적하다.

4층에는 거실 겸 주방과 세탁실 등 공용 공간이 주로 배치돼 있다. 널찍한 주방을 만들어 1인 가구라도 여유롭게 조리할 수 있도록 했다. 입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텍스처 온 텍스처

11명이 함께 쓰는 거실 겸 주방, 세탁실 등은 4층에 있다. 1~3층의 천장고가 2.8m인데 비해 4층은 4.3m에 달한다. 건축가는 “천장이 높으면 아무래도 공간이 더 넓어 보이기 때문에 공용 공간을 4층에 뒀다”라며 “천창과 곳곳에 창을 통해 주변 풍경도 감상하기 적합하다”고 말했다. 주방에는 개수대가 두 개 딸린 긴 싱크대와 인덕션, 오븐 등의 조리기구가 마련됐다. 오수현씨는 “혼자 살면 냄비를 종류별로 갖춘다거나 채반 등 각종 조리기구를 사는 게 힘든데, 다양한 조리기구와 널찍한 공간이 있어 혼자서도 끼니를 잘 챙겨먹을 수 있다”고 했다.

소음이나 사생활 침해 등 함께 사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오수현씨는 “6개월간 살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며 “함께 사는 것을 조건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대부분 배려하는 영향도 크겠지만 공용 공간이 세심하게 설계돼 있어 입주자들이 마주칠 일이 많지 않다”고 했다. 물론 밤 11시 이후에는 음식을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등 큰 소음을 내지 않는다, 반려 동물은 금지한다, 2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청소를 한다는 등의 느슨한 규칙을 마련하고, 피치 못할 사정은 서로 양해를 구한다.

외관은 주변 풍경과의 조화를 위해 살구색에 가까운 벽돌을 사용했다. 밋밋한 입면에 변화를 주기 위해 창의 형태를 달리하면서 안으로 깊이 넣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조용한 주택가와 작은 공원 등이 있는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들어선 ‘청운광산’은 근처에서는 보기 힘든 청년층 1인 가구를 위한 사회 주택이다. ©텍스처 온 텍스처

청운광산은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캐내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 ‘청운’이라는 지명에 광산을 붙여 이름 지었다. 건축가는 “여러 제한 조건 때문에 테라스 등 여유공간을 충분히 넣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집을 지었는데도 주변에서 ‘고급스럽다’라는 반응을 종종 들을 때면 그만큼 1인 가구의 주거환경이 열악했다는 반증 같았다”라며 “이 집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고, 그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