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백악관 방문 비꼰 미국 보수 방송진행자, '아미' 표적 됐다

입력
2022.06.0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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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 백악관 방문한 BTS 향해
"한국 그룹이 미국 인종차별 문제를 논한다니"
BTS 팬덤 아미, "당신이야말로 미국의 문제"

방탄소년단(BTS)의 백악관 방문을 전하고 있는 터커 칼슨. 폭스뉴스 캡처

방탄소년단(BTS)의 백악관 방문을 전하고 있는 터커 칼슨. 폭스뉴스 캡처

그룹 방탄소년단(BTS) 팬덤으로 알려진 '아미'가 미국의 보수 성향 방송인 폭스뉴스의 '얼굴'과 충돌했다.

2일 롤링스톤과 빌보드, 버라이어티 등 미국 연예매체는 폭스뉴스의 유명 진행자인 터커 칼슨이 BTS의 백악관 방문을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다뤘다가 '아미'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칼슨은 지난 31일 방송된 '터커 칼슨 투나잇'에서 BTS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한 건을 두고 "인기가 떨어지는 바이든이 백악관에 K팝 그룹을 초청했다"면서 "K팝 그룹이 미국의 아시아인 혐오 범죄를 논하게 됐다. 그것 참 훌륭한 일(Good job, guys)"이라고 비꼬았다. 칼슨은 BTS를 초청한 바이든 정부를 향해 "이들은 미국을 싫어하고, 미국의 격을 떨어지게 하고 있다. 그에 성공하고 있다"고 비난을 이어갔다.

이날 BTS는 '아시아·하와이 원주민·태평양제도 주민(AANHPI) 유산의 달' 마지막 날을 맞아 바이든 대통령과 아시아계 겨냥 혐오범죄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인종 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다. BTS는 면담에 앞서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과 함께 브리핑룸에 나타나 기자단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BTS 리더인 RM(김남준)은 "우리는 BTS다. 백악관에 초청돼 반(反) 아시아 혐오범죄, 아시아인 포용성과 다양성의 중요함을 논의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BTS가 왜 백악관에서 말하면 안 되나"


K팝 그룹 방탄소년단(왼쪽)이 지난달 31일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령과 면담하고 있다. BTS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K팝 그룹 방탄소년단(왼쪽)이 지난달 31일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령과 면담하고 있다. BTS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사실 칼슨의 이날 방송의 주 표적은 BTS가 아닌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왜 BTS를 백악관에 초대해 미국 인종차별 문제를 묻느냐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야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BTS를 낀 것 자체가 "큰 실수(LA타임스)"였고 결과적으로 아미로부터 부정적인 반응만 불러온 셈이 됐다. 트위터를 통해 해당 트윗을 올린 칼슨의 계정을 향한 멘션(트위터의 답글)도 쏟아졌다. "BTS는 전 세계에 사랑과 통합을 설파하고 있는데, 백악관에 가서도 그걸 하면 안될 이유가 뭔가" 같은 점잖은 의문 제기가 대부분이었다.

격렬한 반응도 이어졌다. 한 팬은 "이 터커 칼슨 녀석이 BTS를 공격한다면 그건 그가 멍청하고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팬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중 하나가 아시아인 증오 문제를 다루고 변화를 이루는 동안 당신은 폭스에서 일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냐. 네가 미국의 문제다"라고 저격했다.

그동안 보였던 BTS의 행보를 고려하면 '한국인 그룹'이라 해서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BTS는 아시아인 혐오 중단을 요구하는 'Stop Asian Hate' 캠페인 지지와 더불어 관련된 메시지도 꾸준하게 내놨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실제 미국 진출 과정에서 아시아인으로 겪었던 차별 경험까지 털어놓은 바 있다. BTS는 실제 "길을 걷다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듣고, 외모를 비하당하기도 했다"며 "심지어 아시안이 왜 영어를 하느냐는 말도 들어봤다"고 떠올렸다.

미국선 '아시아계 롤모델' BTS... 팬덤은 폭스뉴스와 상극

폭스뉴스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뉴스코퍼레이션 빌딩 앞에서 방송사 보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폭스뉴스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뉴스코퍼레이션 빌딩 앞에서 방송사 보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칼슨은 보수 성향이 짙은 폭스뉴스 진행자들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극우파 인사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그를 크게 신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미디어 비평 진보 단체인 미디어매터스는 "트럼프 트위터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직전에 나온 칼슨 쇼를 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 예로 2020년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란과 전쟁을 결행하는 것을 막는 데에도 칼슨의 주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었다.

반면 BTS 팬덤은 미국에서 폭스뉴스와 상극에 위치한 존재다. BTS는 미국의 주류 백인 그룹과는 떨어졌던 아시아계 등 소수인종의 새로운 롤 모델이자 '대안적 남성상'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BTS 팬덤은 국경을 넘어서 서구 사회의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 표현에 적극적으로 저항해 왔다. 2021년 독일에서는 한 라디오 진행자가 BTS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빗대는 사건이 일어나자 아미들이 '미디어의 아시아계 혐오'를 비판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에 앞서 2020년에는 아미를 포함한 K팝 팬덤이 흑인 생명권 운동(블랙 라이브즈 매터)을 비꼴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이트 라이브즈 매터' 해시태그를 K팝 그룹 사진으로 도배해 장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같은 해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장 티켓을 온라인으로 선점한 후 집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노쇼' 운동을 벌여 미국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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