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지원이 국가의 의무

입력
2024.03.17 22:00
26면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특별법에 의하면, 전공의는 일주일에 80시간을 넘지 않게 일하라고 명시돼 있다. 국가가 나서서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으로부터 지켜주려는 취지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을 잘 키워내야 국민들을 전문적으로 지킬 수 있는 미래의 전문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직을 한 전공의들을 향한 비난이 정작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전체 의사 중 10%에 불과한 전공의가 없으면 유지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의료시스템이다. 그들이 없어지니 수술이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중환자실이 위태로워졌다. 초대형 병원들이 한 달도 못 돼 경영난을 겪는다는 소문도 들린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전문의 중심 병원은 신기루다. 대형 병원의 2% 남짓 의료 수익 구조로는 전문의를 많이 채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수의료'라는 허울 좋은 말의 본질은 '중노동 의료'다. 그리고 그 주역은 당연히 전공의들이다. 여기에 진료과목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는 가장 어렵고 귀찮은 접점의 일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앞세운다. 이제 임관한 초급 장교가 최전방 GP의 지휘관이다. 섬마을 초등학교에는 갓 임용된 젊은 교사가 있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노동의 현장에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젊음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지만, 젊은이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도 제값을 쳐주지는 않는다.

피교육자인 전공의는 접점 진료에서 조금 떨어져서 우선 더 질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정부와 병원은 더 많은 전문의를 안정된 신분으로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전공의가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그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병원은 그리 많지가 않다. 수련받을 때 배운 것으로는 병원이 원하는 수익을 창출할 수가 없어, 비급여의 기술을 따로 익혀야 한다. 수도권 소재의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지방의 필수 진료과 의사의 입지는 더 협소하다.

고난 속에는 답이 없고, 의문만 있다. 전공의들은 그저 막연한 미래가 불안하고 불합리한 제도와 강압적인 정책 결정이 이해가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환자와 싸우고 있는 것도, 업무개시명령과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적폐가 쌓인 우리의 의료시스템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라도 나야 저렴하게 이용만 했던 무심했던 세상은 비로소 제기된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인터뷰에 나온 어떤 전공의는 이번 사직 사태를 자발적 수련 포기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가 없다. 그들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4, 5년간의 전공의를 통째로 날리면 전문의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10년 후 2,000명 의사를 더 얻으려고 지금 눈앞의 1만 명 의사를 포기한다는 모순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는 마이크에 대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해 볼 시간이다. 전공의 특별법 제3조에 적힌 국가의 지원 의무는 다음과 같다.

"국가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에 따른 시책 추진에 노력하여야 한다."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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