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은 어쩌다 여당 호재에서 악재 됐나

입력
2024.04.10 15: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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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증원 동력은 국민 압도적 지지
돌파력만 앞세우다 불통 상징 전락
환자 볼모 삼는 게 정말 의사뿐인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0개월쯤 전, ‘의대 정원을 300명 늘릴 때 생기는 일’이란 칼럼을 썼다. 18년째 묶어둔 의대 정원은 의사 권력의 결정판인데 찔끔 증원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원래 협상 테이블에서는, 특히 상대가 강할 땐 일단 크게 지르고 보는 법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2,000명 증원 카드를 꺼냈을 때 많이 놀랐고, 많이 반가웠다. 정부는 물론 전문가들 입에서조차 거의 등장한 적 없는 수치였으니까. 칼럼에 적었듯 ‘크게 지르고 보는 거겠지’ 싶긴 했다. 소심하게 300명을 주장해 300명 증원을 달성하는 것보다 2,000명을 질러서 1,000명을 얻는 것이 훨씬 낫다 싶었다.

아니었다. 2,000명은 협상 불가능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장관이, 차관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10년 뒤 1만5,000명이 부족하다니 5년간 2,000명씩 증원해도 부족한 건 분명했다. 관철시킬 수 있다면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은 필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였을 것이다. 여론조사에선 증원 지지율이 90%를 넘나들었다. 현 정부에서 진보∙보수,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정책이 있었던가. 설령 총선용이라 해도 용인할 만했다. 역대 정부에서 9번 싸워 9번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 처참한 성적표를 이번에도 깨지 못한다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는 기고만장함은 적어도 향후 수십 년 내에 꺾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관철만 시킨다면 윤석열 정부의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의대 증원은 여당에 호재가 아닌 주요 악재 리스트에 올랐다. 황상무, 이종섭, 대파 등과 더불어. 국민들이 의대 증원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형 호재에서 악재로 급전직하한 이유가 무엇일까.

얼마 전 만난 전직 고위 관료는 "시작이 돌파력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불통의 상징이 됐다"고 평했다. 이달 초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그렇다. 무려 51분 동안 읽어 내려간, 1만1,000자, 띄어쓰기 포함해 원고지 70장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담화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물이었을 테다. 칼을 빼들었으니 국면 전환이 될 수 있는 카드를 내놓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달랑 3문장, 85자를 제외하곤 2,000명 증원 당위성과 의사들의 부당성 설파에 할애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옳고, 너희들은 틀렸다. 그래도 혹시, 아주 혹시 더 타당한 안을 들고 온다면 논의는 해볼게.’ 열려 있다는 짧은 대목은 정말 마지못해 얹어진 인상이 짙다. 그러니 의료계가 반발하고, 정책실장이 뒷수습을 한다. 기자들과의 즉흥적인 문답도 아니고 대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읽었는데 이 정도다. “뚝심과 오기는 종이 한 장 차”(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라는 말 딱 그대로다.

지금 이 싸움은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2,000명이든 1,000명이든 혹은 3,000명이든 과학적인 답안지가 단 1개뿐이라고 어느 누구도 말 못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일 것이다. ‘얼마나’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국민들은 여전히 증원을 지지하고 의사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길 응원한다. 그렇다고 피를 철철 흘리길 원한 적은 없다. “환자 1, 2명이 죽으면 의사를 욕하지만, 수십 명이 죽으면 정부를 욕할 것”이라던 어떤 의사의 말은 너무 괘씸하지만 현실이다. 정부는 지금 환자를 볼모로 삼는 게 정말 의사들뿐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국민들에게 최후의 안전판이 돼주는 것,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총선은 끝났다. 의식해야 할 표심마저 사라지면 ‘직진 본능’이 더 살아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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