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졌다고 한반도 외교도 포기할 텐가

입력
2024.04.2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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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북중·북러 고위급 행사 잇따라
'일본 앞세운 미국 vs 북중러' 구도
대사 갑질 논란에 G7 초청 불발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이동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이동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뉴시스

한국의 22대 총선이 진행되던 4월 초. 선거 결과에 정권과 정치권 희비가 엇갈리고 유권자의 눈길이 쏠려 있던 그 시점을 전후해 향후 3년 한반도의 앞날을 좌우할 수도 있는 국제 이벤트가 이어졌다.

가장 주목할 장면은 10일 미일정상회담이었다. “미일동맹 수립 이래 가장 중요한 업그레이드”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설명대로 미일 군사 밀착 수준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군과 자위대 간 지휘ㆍ통제 연계 강화는 물론 극초음속미사일 대응 활공 단계 요격기(GPI) 개발 협력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가 이뤄졌다.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는 정상회담 직전 한 세미나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 중심 압박 틀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다년간 구축한 ‘거점 중심(hub and spoke)’ 구조는 현시점에 적합하지 않다. 중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아 ‘격자형(lattice-like)’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이 바퀴의 중심(hub)에 서서 바큇살(spoke)이 되는 동맹과 우방 국가를 관리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나아가 다양한 소다자 협력체 틀로 여러 층위에서 격자를 만들어 중국 압박ㆍ포위망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핵심에는 일본이 있다. 실제로 11일 열린 미국 일본 필리핀 3국 정상회의, 회담 직전에 공개된 일본의 오커스(AUKUS) 합류를 비롯해 쿼드(Quad), ‘칩4’ 반도체 협력 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일본 중심의 군사ㆍ경제 대중국 포위망을 겹겹이 쌓아가고 있다.

두 번째 주요 포인트는 북한 중국 러시아의 밀착이다. 중국 권력 서열 3위 인사의 11~13일 북한 방문은 5년 만의 북중정상회담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의 만수무강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까지 외치며 중국에 밀착했다.

총선 직전인 8, 9일 중국을 방문한 러시아 외교장관의 행보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중국과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을 한껏 드높이는 일정이었다.

미국이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 의존도를 높이고,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확고해지면서, 그만큼 한반도 주변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4강 대사 중 한 명은 주재관 ‘갑질 의혹’으로 외교부 본부 감찰을 받고 있다. 대사 임명 25일 만에 물러난 전직 국방장관의 염치 없는 행보는 외교가에서 비웃음거리가 됐다.

그나마 회복됐던 한일관계도 외교청서 발간, 우익 교과서 검정 통과,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봉물 헌납 등 변함 없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보로 훼손되고 있다.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초청받지 못했다는 뉴스도 충격이다. 지난해 말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전 참패의 기억도 여전한데 침체된 한국 외교를 그로기 상태에 빠트리는 결정타였다.

한반도 주변 4강 미중일러, 그리고 북한까지 수면 아래 위에서 온갖 외교전을 펼쳐가는 동안 한국은 총선 후 ‘레임덕’, ‘데드덕’ 혼란만 이어지고 있다. 일본 미국에 치우쳐 한국의 외교 공간 확장 기회를 놓치게 만든 대통령실 외교안보 실세는 바뀔 기미가 없다. 22일 시작되는 연례 재외공관장회의에서 한국의 외교 좌표를 재정비하기 위한 죽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길 기대해 본다.

정상원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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