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려니 혼이 다 빠져나간 듯 힘들어"...나훈아, 마지막 투어 나섰다

입력
2024.04.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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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27일 마지막 콘서트 투어 인천서 시작
데뷔 57년 만에 음악 인생 중단 결심
"박수 칠 때 떠나는 것 막상 결심하니 힘들어"

'가황' 나훈아의 마지막 콘서트 포스터. 예아라 예소리 제공

'가황' 나훈아의 마지막 콘서트 포스터. 예아라 예소리 제공

“내가 그만두는 게 서운합니까? (관객이 큰 소리로 ‘네’ 하고 답하자) 그래서 그만두는 겁니다. (작고 무성의한 소리로) ‘예’ 이랬으면 제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박수칠 때 떠나는 게 쉬울 것 같았어요. 제 모든 청춘을 여기에 다 바치고 노래하며 살아왔는데 시원섭섭한 게 아니라 제 혼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진짜로 혼자 힘들었습니다.”

‘가황’ 나훈아(77)가 57년의 음악 인생을 마무리하며 지난 2월 밝혔던 은퇴 선언을 재확인했다.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마지막 콘서트 투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의 포문을 연 그는 이날 무대에서 “피아노 앞에 절대 앉지 않을 것이고 기타도 절대로 안 만지고 책은 봐도 글은 절대 안 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객석 곳곳에선 “아직 쌩쌩한데” “안돼” 하는 탄식이 이어졌다.

2시간 30분 동안 22곡 열창...하루 2회 공연에도 단단한 가창력 선보여

공연은 초침이 7시 30분 정각을 가리키자 곧바로 시작했다. 데뷔 해인 1967년부터 2024년까지 달리는 영상으로 포문을 연 이날 공연에서 나훈아는 ‘고향역’을 시작으로 ‘18세 순이’까지 여섯 곡을 쉼없이 부르며 곡 사이마다 매번 옷을 갈아입었다. 무대 위 반투명 가림막 뒤로 흐릿하게 나체의 상반신이 비칠 때마다 객석에선 탄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특히 ‘18세 순이’를 부를 땐 속살이 훤히 비치는 핑크색 망사 상의에 검정 치마를 입고 노래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공연이 마음에 안 들어) 본전 생각날까 봐 공연에서 15번 갈아입는 연출을 했다”면서 웃었다.

이날 오후 3시 첫 공연에서 2시간여 동안 관객과 호흡한 나훈아는 저녁 7시 30분 공연에서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약 2시간 30분 동안 22곡을 불렀다.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가창력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는 “오늘 저는 잘할 거다. 인천에서 하는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 공연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면서 “우리 정도 오래 노래한 사람들은 노래를 쉽게 하는 법을 알지만 절대 대충대충 쉽게 하지 않고 한 소절 한 소절 또박또박 부르겠다.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10년은 더 할 거라 생각하며 하겠다”고 말했다.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 ‘가시버시’ ‘물레방아 도는데’ ‘홍시’ '무시로' '테스형' 등 오랜 히트곡과 신곡이 이어졌다. 1997년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했던 공연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로 언급한 그는 당시 불렀던 ‘인생은 미완성’을 다시 부르기도 했다. 이 곡을 비롯해 고전 가요인 ‘울어라 열풍아’, ‘황성옛터’, 팝 명곡 ‘마이 웨이’ 등 커버곡도 불렀다. “가수를 그만두기 전에 꼭 고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데 공연 때 ‘앙코르’ 하지 말고 ‘또’라고 하자”는 제의에 관객들은 이후 노래가 끝날 때마다 ‘또!’ ‘또!’를 외쳤다.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션시아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투어의 첫 날 공연이 열리기 전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있다. 고경석 기자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션시아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투어의 첫 날 공연이 열리기 전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있다. 고경석 기자

나훈아는 이날 공연에서 자신과 관련한 일부 소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유튜브에 내 보고 내년에 죽는다고 어떤 점쟁이가 그라드라고. 또 어떤 점쟁이는 내한테 아픈 게 보인대. 그래서 그만두는 거라고.” 그러면서 지난 2월 병원에서 했다는 혈액검사 결과를 대형 스크린에 띄우며 “수치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빨간색 글씨가 있는데 25가지 중 하나도 없다”고 했다.

"(정치인들) 하는 짓거리들이 성질 나서 이젠 뉴스도 안 본다"

2020년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에서 ‘위정자’ 발언으로 수많은 억측을 낳았던 그는 이날 공연에선 꾹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박정희부터 윤석열까지 11명의 대통령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선 “내가 노래하는 동안 대통령이 11번 바뀌었는데 저는 아직도 노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드라마도 음악 프로그램도 안 보지만 유일하게 보는 게 뉴스였는데 이젠 뉴스도 안 본다. (정치인들) 하는 짓거리들이 성질 나서”라고 말해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점마(저놈)들이 독도는 저그(자기) 땅이라 캐서 속에서 열불 천불이 나 속이 뒤집어서 죽을라 그러는데 일본에서 공연 제안이 왔다”면서 일본 TV로 중계되는 공연에서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가사를 집어 넣은 일화도 소개했다.

지난 2월 27일 나훈아가 소속사를 통해 공개한 은퇴 선언 편지. 예아라 예소리 제공

지난 2월 27일 나훈아가 소속사를 통해 공개한 은퇴 선언 편지. 예아라 예소리 제공

노래를 부를 땐 진지하다가도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넬 땐 코미디언 못지 않은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공연 때마다 ‘공’의 후렴구 ‘띠리리 띠리 띠리리’를 부르려다 중단하며 풍자와 농담, 비판이 섞인 이야기를 짤막하게 전하는 퍼포먼스도 잊지 않았다. “가수를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가 몇 년 전 지방 공연에서 머리 허연 할머니가 내보고 ‘오빠아~’라고 해서 ‘아, 내가 할배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라는 오랜 농담은 또 다시 객석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앞선 오후 3시 공연에선 이 곡을 부르며 “북쪽은 이상한 집단이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쪽의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가지고 혼자서 다 이야기하고 싫다고 하면 끝이다” 등의 이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저녁 공연에선 언급하지 않았다.

나훈아는 27, 28일 인천 공연 이후 청주, 울산, 창원, 천안, 원주 등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예매가 시작된 13회 공연은 모두 금세 매진됐다. ‘고마웠습니다’ 투어는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지며 7월 6일 전주 공연 외에 구체적 일정은 미정이다. 올 연말 서울에서 마지막 공연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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