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특검' 통과에 대통령실 "죽음 악용한 나쁜 정치"… 尹, 거부권 수순 밟을 듯

입력
2024.05.02 19:05
수정
2024.05.02 21:28
6면
구독

정진석 비서실장, 직접 고강도 비판
"협치 잉크 마르기도 전… 기존 수사 봐야"
與도 "대통령 거부권 건의할 수밖에"
영수회담 사흘 만 정국 냉각 가능성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단독 처리와 관련해 대통령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단독 처리와 관련해 대통령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한 사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10번째 거부권 행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9일 영수회담 이후 조성되던 협치 분위기도 급속히 냉각될 전망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며 일방 강행 처리한 것에 대단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검법 강행 처리에 대해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날 정 실장 비판은 그간 여권의 반대에도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법안들에 대한 대응보다 수위가 높다는 평가다. 실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9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법안이 국회에서 정부로 넘어오기 전까지 선제적으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말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이관섭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총선 겨냥 흠집내기용'이라고 비판한 전례가 있을 뿐이다. 당시엔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결심한 당일에서야 대통령실은 유감을 표했다. 이와 비교해도 정 실장의 이날 대응은 형식과 시점, 내용 모두 수위가 높았다.

대통령실은 채 상병 특검법 내용에 대해서도 '진행 중인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정 실장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에서 철저한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수사당국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임에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는 것은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의 격앙된 분위기를 감안하면 향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채 상병 특검법 통과 이후 규탄대회를 열고 "입법 과정과 내용물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영수회담 불과 사흘 만에 민주당이 특검법 강행에 나섰다는 사실이 대통령실의 공분을 키웠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영수회담에 이은 이태원특별법 합의 처리로 협치에 대한 기대가 높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의 일방적인 입법 폭주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협치 첫 장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입법 폭주를 강행한 민주당은 여야가 힘을 합쳐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21대 국회 임기 내 재표결까지 염두에 두고 이날 특검법을 밀어붙인 만큼, 2차 영수회담을 비롯해 여야 간 협치 분위기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정준기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