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죽이지 마세요" 서울대공원 숨진 호랑이 '태백' 박제 또 논란

입력
2024.05.08 14:00
구독

"기록과 교육의 가치" vs "죽은 후에도 이용"


지난달 19일 사망한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5세· 수컷)의 생전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지난달 19일 사망한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5세· 수컷)의 생전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서울대공원이 지난달 19일 사망한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5세· 수컷)의 박제를 추진 중인 것을 두고 시민들이 철회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다. 대공원은 자연사의 기록이자 후대에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들은 "호랑이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8일 서울대공원에 따르면 홈페이지 내 태백의 사망 소식을 알린 공고문에는 태백의 박제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이와 별도로 대공원에는 박제를 철회해달라는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서울대공원 시베리아호랑이 ‘강산’의 박제된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서울대공원 시베리아호랑이 ‘강산’의 박제된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박제는 뼈로 하는 골격 표본, 가죽으로 하는 박제 표본, 화학액체에 담가 보존하는 액침 표본, 가죽의 모피 표본 등이 있는데 대공원은 자연사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 동물을 골격 표본이나 박제 표본으로 제작해왔다. 대공원 측이 박제한 시베리아 호랑이는 2016년 '낭림', 2020년 '코아'와 '한울', 2021년 '강산' 등 총 네 마리다.

대공원 측은 "태백이 사후에도 평안하게 영원히 자연 속에서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표본은 자연사의 기록이자 국가 자연 유산이며, 후대 과학자들의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표본으로 제작해 보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민들은 이미 호랑이 표본이 네 마리나 있는데 굳이 태백을 박제해야 하냐고 주장한다. 이들은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호랑이들을 박제시켜 보존하는 것은 후손에게도 소중한 자연 유산이 될 수 없다", "동물을 구경거리로 보는 구시대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행위다", "인공지능(AI) 영상으로도 충분히 실제 호랑이 모습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등의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과 2018년 12월 죽은 서울대공원 시베리아 호랑이 ‘코아’, ‘한울이’의 박제된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지난 2016년 10월과 2018년 12월 죽은 서울대공원 시베리아 호랑이 ‘코아’, ‘한울이’의 박제된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더욱이 시민들은 태백이 지난 2월부터 건강 이상 징후를 보였음에도 죽기 나흘 전에야 전신마취를 한 뒤 검진한 것을 두고 관리소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대공원 측은 "맹수의 특성상 전신마취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민들은 시베리아 호랑이가 지난 2년간 대공원에서 사고나 질병으로 숨진 사례가 네 마리에 달하는 점을 들며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박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도 심장질환과 열사병으로 사망한 서울대공원 호랑이 '수호'도 시민들의 반대(본보 11월 14일 보도)로 박제 대신 사체를 소각했고 지난 2018년 대전오월드에서 탈출했다 사살된 퓨마 '뽀롱이'도 교육용 박제가 거론됐다가 시민들의 반발에 철회됐다.

교육용 박제 두고 전문가들도 의견 갈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학술용 박쥐 박제 표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학술용 박쥐 박제 표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전문가와 동물단체는 박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국민의 정서도 고려하지는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호랑이 등 멸종위기종을 계속 번식하는 것보다 동물을 표본으로 제작해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는 장점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살아있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더 관심을 갖는 게 동물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학술용 박제를 해온 서문홍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교육과 연구사는 "사체를 박제해 교육, 전시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이 동물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해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문 연구사는 "다만 시민들의 반대 의견이 심하다면 공공기관으로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제 대신 3D 등의 기술을 활용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도 있다. 사육곰 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박정윤 수의사는 "감정이 실린 눈동자 대신 박제된 호랑이의 모습을 보면서 호랑이의 외모 이외에 어떤 감응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수의사는 "전시동물이 처한 문제에 고민하고 있는 시대에, 더욱이 과학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죽은 동물을 교육용으로 박제한다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