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를 더 전산화할 수는 없을까

입력
2024.04.17 00:00
26면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0일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 검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0일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 검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이 끝났다. 야권의 압승이었다. 이미 여권에서도 반란표의 조짐이 보이고,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문제 삼을 게 또 있다. 개표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정확한 선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밤을 꼬박 새야 했다. 이는 모든 비례정당 투표용지를 수개표해야 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이번에는 난립하는 정당이 너무나 많았고, 그래서 원래 쓰는 개표기에 용지가 안 맞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맞다. 이번엔 정말 비례 정당이 많았다. 그중 몇몇 정당들은 특기할 만하다. '가가국민참여신당'은 그 뻔뻔한 이름으로 10번을 먹는 데 성공했고 '가가호호공명선거대한당'은 가가에 최소한의 뜻은 있어야 한다는 마지막 양심 때문에 결국 11번을 먹는 데 그치고 말았다. 히시태그국민정당은 '해시태그'의 해를 히로 바꾸는 비범한 결정을 내려가면서 최종 순번을 먹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세 정당 다 당연히 멸망했다.

정말 세금 낭비이지만, 그렇다고 비례대표 정당 기탁금을 늘린다든가 하면 안 된다. 정치에 참여하는 데 드는 장벽은 낮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나는 개표를 좀더 전산화하는 데 투자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만약 선거 개표를 전산화한다면, 리스트에 정당 하나 더 넣는다고 해서 불쌍한 나무가 학살당할 일이 없다.

이러면 항상 개표 전산시스템의 해킹 위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디지털이나 아날로그나 세상 모든 것에는 보안 위험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해킹 프로그램이 담긴 USB를 컴퓨터에 꽂으면 선거 결과를 해킹할 수 있으니 위험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아날로그 방식도 별다를 것이 없다. 예를 들면 개표소를 정전시키고 그 틈을 타 가짜 표를 쏟아 넣는 식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실제로도 세계 곳곳에서 너무 자주 일어났다.

사실 일반적으로 보안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기계보다는 인간 때문이다. 최신 블록체인 기술로 보안 수준을 극도로 강화하더라도, 64자리 암호키를 포스트잇에 적어서 컴퓨터 앞에 적어놓는다면 당연히 뚫린다. 나는 선관위 공무원들이 그 정도의 '휴먼 에러'는 저지르지 않을 정도로 숙련된 전문가라고 믿는다.

만약 디지털 선거 환경을 제대로 구축한다면 선거 제도의 변화도 아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 제도를 개방형 명부제(비례대표 정당만 뽑는 방식이 아니라, 비례 정당의 후보를 뽑는 방식)로 바꾼다 치자. 이걸 이번 총선에 도입했으면 선거용지가 도배지 규격으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전산화 시에는 그럴 문제가 전혀 없다.

물론 개표 전까지는 세상 태평하다가 낙선하자마자 갑자기 이 우주의 모든 음모에 도통한 듯 진지한 증거 하나 없이 해킹을 통한 부정선거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가상의 우주를 만들어 도망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전국 단위 규모의 큰 선거를 치를 때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나타난다. 안타깝지만, 그들은 정치학이나 정보보안학보다는 이상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과제로 두는 편이 좋겠다.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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