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 탈 때마다 500원 적자... "지하철 요금 조정 법제화해야"

입력
2021.05.26 04:30
수정
2021.05.26 09: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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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원가 대비 운임비
런던·뉴욕 등보다 현저히 낮아
지속 가능한 시민의 발 위해선?
운임 현실화 솔직히 설명해야
"노인 급증… 무임승차도 손봐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줄을 선 시민들이 전동차에 탑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줄을 선 시민들이 전동차에 탑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과 수도권의 혈관, 시민의 발 역할을 하는 지하철의 지속가능성은 운영사인 서울교통공사의 기형적 인력구조 개선만으로는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00명 감축’ 자구안을 냈다가 서울시로부터 거부당한 교통공사가 보다 강화된 “1,000명 ‘이상’ 정원 감축”과 함께 대규모 명예퇴직 카드도 준비했지만, 지난해 1조1,000억 원 손실에 이어 올해 예상 적자 1조6,000억 원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경영합리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운임 인상, 비운수사업 비중 확대 등의 노력이 따라야 빚으로 연명하는 고리를 끊을 수 있다.

“한 명 태우고 500원씩 손해”

이 같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은 낮아도 너무 낮은 원가보전율. 25일 교통공사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의 서울 지하철 수송원가는 1인당 평균 1,440원이었다. 그러나 공사가 받은 평균 운임은 936원으로, 원가보전율 0.66을 기록했다. 한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고도 500원 가까운 적자를 본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승차인원이 급감한 지난해에는 수송원가가 2,061원으로 급등했다. 원가보전율은 0.46으로 급락했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교통복지 차원에서 원가보다 낮은 요금이 책정됐다”며 “그렇다 해도 운영 원가를 밑도는 운임으로는 누가 뭘 해도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지하철의 ‘원가보전율 0.66’은 세계 주요 도시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것이다. 다국적 지하철 연구단체(CoMet)가 2018년 세계 39개 도시 지하철 요금의 원가보전율을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0.73으로 조사됐다. 150년 역사의 영국 런던(1.23)과 홍콩(1.76), 뉴욕(0.85) 등 주요 도시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1㎞당 운임도 서울은 0.07달러(약 80원)로 런던(0.32달러), 뉴욕(0.22달러), 홍콩·파리(0.14)보다 낮다.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서울 지하철에 감탄하는 배경엔 공사의 손실이 있었던 셈이다.

요금 인상 ‘법제화’해야

사정은 이렇지만, 서울지하철 기본 요금은 6년째 동결이다. 그만큼 인상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이 요금인상을 추진했다 실패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교통공사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민들도 어렵다”며 요금 인상에 선을 그었다.

시 안팎에서는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요금인상은 2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2023년 상반기에나 인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새 시장 임기가 시작된 뒤 ‘운임 현실화’를 명분으로 인상됐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의 법제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운임산정 방식의 객관적 기준을 정하고, 이를 법제화해 세부적인 결정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임승차’는 국책, 국가가 지원해야

운임 정상화 노력과 함께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 보전이 어떤 식으로든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사 출범 첫해인 2017년 당기순손실 5,254억 원 중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3,506억 원으로 전체 손실의 67%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전체 손실의 63~65%를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가 차지했다.

이에 따라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른 정부의 지원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내 노인 무임승차는 1980년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 50% 감면해준 것이 시작이다. 이후 대상과 지원 폭이 확대됐다. 당시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4%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7% 수준이다. 정성봉 서울과기대 철도대학원 교수는 “노인 인구가 계속 빠르게 늘고 있어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이 문제를 공사가 기약 없이 안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공사의 경영합리화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무임승차’ 대목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민 2,500만 명이 매일 이용하고, 지하철 무임승차가 국가 정책으로 시행됐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도시철도 운영의 주체는 지자체이기에 정부가 간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현재 한국철도공사의 무임승차 손실만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시민의 발’ 지하철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운영사인 교통공사의 사업 다각화도 필요하다. 교통공사 통합 출범 전 실시된 조사보고서에서 용역을 실시한 맥킨지는 비운수사업 부문에 전체 인력의 5%를 배치, 수익 구조 다변화 및 개선을 주문했다. 교통공사 신성장본부가 이 역할을 맡고 있지만, 직원 수는 149명으로 전체 직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박민식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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