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 외나무다리 그림자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그림자

입력
2022.03.24 20:00
25면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사진을 180도 회전한 것이다. ⓒ오성주

우리는 경북 영주 무섬마을에 밤 7시 무렵 도착하였다. 1월의 밤 공기는 차가웠다. 주인 할머니의 안내를 받아 민박집에 들어서려는 순간, 5살 아들이 못 들어가겠다고 버텼다. 아이는 리조트 같은 현대식 숙소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뜻밖의 아이의 행동에 당황했다. 민박집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짜리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집이었다. 아랫목은 온기가 있었지만 공기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벽에서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이 감각들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끌어냈다. 한겨울이면 외풍을 피해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으름을 피우다 연탄불을 꺼트리던. 내가 당황했던 것은 내 어린 시절의 생활이 옳고 아이도 이를 당연히 수용해야만 한다는 고집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지독히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아이보다 나 자신에게 더 당황했을 것이다.

만 3년이 지나 무섬마을을 다시 찾았다. 아들의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한낮에 도착했다. 무섬마을은 내성천이 갈고리처럼 휘어지는 안쪽에 자리 잡아 이름처럼 물 위에 뜬 섬 같다. 차가운 바람이 산에 막혀 들어오지 못하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다. 아이들은 곧장 강으로 내달려 갔다. 겨울이라 물이 거의 흐르지 않고 깊은 곳도 무릎 높이다. 강둑 사이의 폭이 200m는 돼 보이는데 물이 흐르는 자리보다 깨끗한 모래사장이 훨씬 넓어 해수욕장 같다. 물을 가로질러 놓인 외나무다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이어붙인 것이다. 콘크리트 다리가 있기 전에는 이 외나무다리가 바깥과 연결된 유일한 창이었다. 외나무다리는 마치 '내 위를 걸어봐'하고 속삭이는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은 다리 위를 걷고 만다. 혼자 걸을 수밖에 없는 좁은 자리이지만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외나무다리로 이어져 하나가 된다.

사진은 사람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으로, 사진의 방향을 위아래로 돌린 것이다. 물에 비친 사람들의 그림자는 아주 선명해서 진짜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물이 많지 않은 겨울이나 봄이 그림자를 구경하기 좋다. 왜 그림자인 줄 알면서도 실제 사람이라는 느낌을 거두기 어려울까? 우리 눈은 동족인 사람의 얼굴과 몸의 형태에 민감하도록 진화하고 학습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과 몸 형태와 비슷한 패턴만 보고도 저절로 그렇게 보고 만다. 콘센트 구멍에서 사람 얼굴을 보고, 나뭇가지를 보고 사람의 몸을 보기도 한다. 뇌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실제 사람 얼굴이나 몸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귀 뒤편에 있는데 가짜 얼굴이나 몸을 볼 때도 비슷하게 활성화된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사람의 몸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고, 형태는 물의 파문에 잔잔하게 흔들려 사람의 몸에서 이탈한 환상을 일으킨다. 그림자는 거의 무채색이고 생생하지 않다. 이런 특징들은 물 위의 그림자가 현재보다 과거에 가깝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과거의 기억들이 자리잡고 있다. 언제나 뒤쳐진 유행과 기술문명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그에 따른 감정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일상에 두껍게 덮혀 있을 뿐이다. 나는 둑 위에 서서 3년 전 묵었던 민박집을 유심히 보았다. 더 이상 주인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 강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틀림없이 어린 시절 또 다른 나의 그림자이다. 무섬마을에는 두꺼운 낙옆층에 쌓인 유쾌한 감정들을 들춰내는 단서들이 있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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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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