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국의 바둑판을 읽을 수 있나

우리는 중국의 바둑판을 읽을 수 있나

입력
2022.04.11 19:00
25면

고수들의 바둑-간발의 차이

3월 말,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아시아는 대국들의 바둑판이 되기를 거부한다. 아시아 국가들도 대국들의 바둑돌이 아니다.(亞洲拒絕成爲大國博弈的棋盤, 亞洲國家也絕不是大國對抗的棋子.)"라고 하였다.

과연 그런가. 외려 중국이야말로 바둑 두듯 외교 전략을 구사한다고 보는 이가 있다. 헨리 키신저는 '중국 이야기(원제 On China)'에서 중국 외교를 설명하기 위해 체스와 바둑 그리고 '손자병법'을 끌어온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

키신저는 영웅주의적 공적을 강조하며 결정적인 힘의 대결을 칭송하는 것이 서구의 전통이라면, 중국의 이상은 섬세함과 간접적 전략, 그리고 상대적 우위(relative advantage)를 끈질기게 축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양자의 차이를 각 문명이 선호하는 게임인 '바둑'과 '체스'의 특성으로 풀어낸다.

체스가 '결정적인 전투의 게임'이라면 바둑은 '쉽사리 끝나지 않는 작전의 게임'이다. 체스는 정면 충돌을 통해 적의 말을 제거하는 완전한 승리(total victory)를 추구하지만, 바둑은 판의 '비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면서 상대의 전략적 잠재력을 서서히 줄여간다. 이런 패턴은 심리적 압박을 통한 승리에 가치를 두고 직접적 분쟁을 피하는 전략적 사고와도 연결되는데 '손자병법'이 그 정점이다. 키신저는 중국 대외 전략의 큰 얼개가 여기서 나왔다고 말한다.

바둑을 원용하여 중국의 외교를 분석한 헨리 키신저.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역사와 문화 심리에 대한 통찰은 실로 예리하다.

중국 영평. 산해관과 베이징 사이 지역를 일컫는데, 이중 중심이 노룡이다.

숙명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어야 했던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본다. 마침 한국의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재위 1368∼1398)은 고려와 교류에 열심이었다. 1368년 즉위하자마자, 먼저 사신을 보내 개국을 알리고 우의를 강조했다. 그런데 1392년 이성계가 집권하자 태도가 돌변하여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조선이 적극적으로 구애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1393년 5월 '태조실록'에는 명나라가 조선에 위협적인 내용의 국서를 보내오자 이성계가 발끈한 기록이 있다.

"황제는 군사가 많고 정치와 형벌을 준엄하게 하여 천하를 차지했지만, 사람을 죽임이 지나쳐서 공신들도 생명을 보전하지 못한 자가 많았다. 게다가 작은 우리나라를 자주 책망하면서 요구가 한량이 없었다. 지금 또 나에게 죄가 아닌 것을 책망하면서 군대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니, 어린아이에게 공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행간에서 이성계의 분노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우선 말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섬길 뿐이다"라며 한발 물러선다. 대체 주원장은 왜 생트집을 잡았는가. 1395년 4월 명나라 '홍무실록(洪武實錄)'에 다음 같은 기록이 있다.

"짐이 보건대 고려(즉 고구려)는 예부터 늘 중국과 싸웠다. 한나라, 당나라 때는 요동지방을 모두 차지해서 곧장 영평땅(永平, 산해관과 북경 사이)까지 이르렀다. 만약 지금 조선이 20만 병사를 출동시키면 우리 군대가 어찌 대응하겠는가?"

당시 주원장은 힘의 공백이 생긴 요동을 걱정했고, 고구려 땅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초조했다. 역사를 복기해서 수를 먼저 읽었다고나 할까. 치열한 수싸움의 결과, 정권 안정이 급했던 조선은 국경선을 뒤로 물린다.

물론 작금의 대한민국은 조선과 같은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2022년 오늘, 한국 정부에 키신저 같은 인물이 있는지, 중국의 바둑판을 내려다볼 실력이 있는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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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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