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임신… 회사에선 '무능력한 직원' 됐습니다

6년 만의 임신… 회사에선 '무능력한 직원' 됐습니다

입력
2022.04.28 04:30
14면

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결혼 6년 만에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어요. 출산휴가 계획을 세워야 하니 회사에 어떻게 신청하면 되는지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알리게 됐죠. 제가 궁금했던 건 절차와 일정이었는데 돌아온 건 '해고통지서'였어요. 회사 사정이 좋지 않대요.

상사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다음 달부터 출근하지 말고, 퇴사일까지 남은 일수는 연차 처리할 테니 태교에 집중하라고 하더라고요. 회사가 어렵다니 어쩌겠어요. 그런가보다 받아들여야죠. 해고통지서에도 사유에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인원 감축'이라고 써 있었고요.

황당한 일은 연차로 쉬던 중에 터졌어요. 회사가 채용공고를 올린 거예요. 정확히 제가 일했던 자리였어요. 경영난으로 인한 인원 감축이라더니, 저랑 똑같은 부서에, 제가 하는 업무를 할 사람을 새로 구한다니요. 너무 억울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신고했어요. 그사이 저는 연차가 다 차감되고 해고 처리가 됐습니다.

복직시키더니 '능력 부족' 두 번째 해고

회사는 왜 신고하냐며 "어차피 우리가 복직 거부하면 출산휴가, 육아휴직 다 못 받아"라면서 협박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막상 노동위 조사가 시작되니까 복직을 시키더라고요. 이제 해결되나 싶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출산 한 달 전 복직한 저한테 회사는 이상한 일을 시키기 시작했어요. 오래 서 있어야 하거나 배가 많이 나온 상태에서 하기 힘든 일을 맡겼죠. 저만 쏙 빼놓고 지시 사항을 전달해서 제가 할 업무 내용을 듣지 못하는 일도 있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더니 '지시 불이행, 무단이탈, 직무능력 부족'을 이유로 또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회사의 이런 행태에 너무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진정까지 넣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진정을 취하하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1년을 지급하겠답니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면 실업급여랑 퇴직금을 잘 챙겨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출산휴가든 퇴직금이든 뭐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걸 왜 회사는 자꾸 혜택을 베푸는 것처럼 구는 걸까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A씨(30대 여성)

임신이 이유가 되는 해고는 없다

남녀고용평등법·근로기준법 주요 내용

<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
-근로자의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여성 근로자의 혼인, 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 된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
-산전(産前)ㆍ산후(産後)의 여성이 이 법에 따라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과 근로기준법은 정년, 퇴직, 해고에 있어 남녀를 차별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휴직, 정직 등을 명백히 금지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여성 근로자가 임신했을 때 이를 이유로 퇴사를 권유하거나 해고하는 건 엄연히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 출산 전후 휴가 기간과 그 후 30일 기간, 육아휴직 기간 동안은 해고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경우 같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해당 기간에는 해고가 불가능하다는 걸 사용자도 알아야 합니다.

'명분 찾아내 해고'가 현실

문제는 현실이죠. 대놓고 임신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A씨처럼 다른 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명분을 찾아내 부당해고나 퇴사권유를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당했다면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근로기준법 제28조는 부당해고를 당했을 경우 해고를 당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본인 지역을 관할하는 노동위에 '해고 등의 구제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출산·육아휴직 거부? '될 때까지 신고'도 가능

게티이미지뱅크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주지 않거나, 다녀왔더니 불이익을 줬다면, 이건 노동청 진정에 해당하는 사안입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근로자가 신청하면 회사가 '반드시' 부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여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돼요.

출산전후휴가를 거부한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 거부 시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출산·육아휴직 부여 의무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벌금 냈으니까 휴가 안 줘도 되잖아'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업주들도 있어요. 허용될 때까지 신고할 수 있고, 신고 때마다 벌금이 부과됩니다.

그리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관련 문제는 임금체불이나 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보다 진정 후 조사 기간도 짧은 편입니다. 퇴직금이나 임금체불 문제는 상황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 입장 청취, 대면 조사 등이 필요하거든요. 반면에 출산·육아는 시점이 정해져 있고 사안이 훨씬 명백해 신속하게 진행되니 꼭 제도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정식 '휴가 신청서' 챙겨야… 카톡, 녹취도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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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부하거나, 복귀했을 때 원직 복직을 거부하는 일이 생기면 근로자는 일단 막막한 감정부터 듭니다.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좋게 해결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는 분들도 있죠. 결혼과 육아가 여성의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경력단절 여성이 일을 그만둔 이유는 육아가 43.2%, 임신·출산이 22.1%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우선 회사가 휴가, 휴직 부여를 거부한다면 정식으로 출산휴가·육아휴직 신청서를 먼저 제출하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보통 회사에선 휴가나 휴직 들어가기 한 달 전에 이 신청서를 제출하고, 신청서에는 휴가 및 휴직 기간, 본인 서명 등이 들어가게 되죠. 이 신청서를 내고, 그에 대한 회사 반응, 즉 거부 의사를 밝히는 회신을 증거로 확보하셔야 합니다.

일부 영세 사업장에선 회사에다 말로만 "언제부터 갈게요"라고 보고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구두로 주고받더라도 기간을 언급한 녹취, 그 외에도 주고받은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증거 수집이 가능합니다.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아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노동자, 직장인의 기본 권리입니다. 출산휴가는 근로자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부여해야 하고, 육아휴직은 근로자 신청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부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해고, 퇴사 압박을 겪습니다. 명백한 법적 처벌 대상임에도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임신기 노동자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죠. 제도가 있으나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도 수없이 지적돼 왔습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은 회사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입니다. 태아와 모체를 건강히 관리하고 업무에 안전히 복귀할 수 있도록 회사 내의 인식 개선과 정기적 현황 점검, 적발된 위법 사례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이 필요합니다.

제도적 지원 역시 받쳐줘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영세사업장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직원이 휴직에 들어가면 인력 공백이 생기고, 그럴 때면 계약직을 뽑아야 하죠. 뽑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오래 근속했던 숙련된 근로자의 빈자리에 바로 투입하는 것도 힘들어 타격이 클 수밖에 없거든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대기업이면 몰라도 영세한 업장은 도입이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정부가 사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업주도 어려움 없이, 노동자도 눈치 보지 않고 법에서 정한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번호 1670-1611)는 전국 11개 지부(서울·인천·부천·전북·광주·안산·부산·마산창원·대구·수원·경주)에서 '평등의전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차별과 성희롱을 비롯해 임금체불, 부당해고,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하는 불리한 대우, 폭언·폭행 등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도와줍니다.


정리=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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