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시키면서 퇴근 후 밥 먹으라는 팀장, 문제없나요?

"밥 먹을 시간에 일하고 빨리 퇴근해" 저만 이상한가요?

입력
2022.05.12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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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은 4시간마다 30분씩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완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기 부지기수다. 게티이미지뱅크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으니 얼른 끝내고 저녁은 집에 가서 먹읍시다."

매일 같은 대사다. 지난해 한 외국계 회사의 재무팀으로 이직한 박재희(가명·31)씨는 반복되는 팀장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을 친다. 재희씨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인데 한 번도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다. 일러도 7시, 늦으면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이 일상이다.

잦은 야근보다도 재희씨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쉬는 시간의 부재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 이후 퇴근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다. 길면 10시간이 넘도록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셈이다. 저녁 식사는 언감생심이다.

팀장은 "팀원들을 위해서"라고 항변한다. 저녁 식사를 챙기는 대신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 그러나 통근에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재희씨 입장에서 '퇴근 후 식사' 방침은 사실상 저녁을 굶으란 얘기와 다르지 않다. 이러다 보니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는 불규칙한 식사 습관이 생겨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재희씨는 동료에게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의외로 미적지근했다. 한 팀원은 "불편한 사람들과 저녁 먹고 퇴근이 늦어지느니 일찍 가서 쉬는 게 훨씬 낫지 않냐"고 반문했다. 재희씨는 궁금하다. 이게 진짜 팀원을 위한 걸까.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연장 근무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걸까.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은 '4시간에 30분씩'...현장에선 보장 안 돼

지난달 18일 점심시간에 서울시청 인근 거리가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밥 먹었니"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인사치레로 할 정도로 끼니를 중시하는 '밥의 민족'에게 근무 중 식사 시간 보장은 중요한 문제다. 근로기준법에는 식사 시간이 따로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휴게시간'으로 이를 보장한다. 근로기준법 제54조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를 정규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있는 사업장은 통상 낮 12시부터 한 시간이 휴게시간이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언뜻 문제 될 게 없어 보이는 규정이지만 현실에서는 적용하기 애매한 '회색지대'가 많다는 게 문제다. 재희씨 사례처럼 초과근무 상황에서의 휴게시간 보장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는 하루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서도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이 부여돼야 한다고 판단해도 현장에서는 매번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4시간 미만 근무라면 휴게시간 부여 의무가 없어 "3시간 30분만 바짝 야근하고 퇴근하라"는 황당한 지시가 떨어지기도 한다.

여수진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본래 휴게시간은 근로시간 중간에 부여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장에서 야근을 당겨서 하고 빨리 퇴근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며 "휴게제도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단속이 나와도 법 위반으로 적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고정되지 않은 점심시간..."부르면 달려가야 해요"

게티이미지뱅크

업무 종류에 따라서는 점심시간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반도체 장비 회사에 다니는 엔지니어 이정민(가명·26)씨 역시 이 같은 고충을 호소한다.

정민씨는 고객사 요청에 언제든지 달려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아무리 빨라도 보통 오후 2시는 돼야 점심 식사가 가능하다. 오후 5시까지 한 끼도 못 먹는 일은 흔하고 야근을 하더라도 저녁은 꿈도 꾸지 못한다. 회사에서는 "일하다가도 점심시간 되면 놓고 식사하러 다녀와도 된다"고 말하지만 고객사 눈치를 봐야 하는 현장에서 이렇게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오후 늦게 밥을 먹다가 고객사 전화 한 통에 먹던 밥을 그대로 버려두고 나와야 했던 적도 있다.

정민씨는 "일이 많아 야근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고객사든 우리 회사든 스케줄을 짤 때부터 엔지니어 식사 시간에 관심조차 없는 걸 보면 내가 마치 공장의 부품이 된 것 같다"며 "이렇게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에 딱히 어긋나는 게 아니라고 하니 황당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정작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도 임금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강미숙(가명·54)씨의 경우 대형마트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한다. 휴게시간이라고는 점심시간 한 시간 외에 가져본 적 없지만, 임금을 받을 때는 실제 근로시간인 10시간 30분이 아닌 9시간 30분에 해당하는 돈만 받는다. 미숙씨가 항의했지만 마트 사장은 "점심시간 딱 한 시간만 쉬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중간중간 차 마시며 앉아 있는 시간도 휴게시간에 포함된다"고 잘라 말했다. 미숙씨는 매일 저녁식사를 제때 챙기지 못해 진이 빠진 채로 귀가한다.

'끼니 못 챙기는 근로자'들에게 주는 조언

게티이미지뱅크

노동 전문가들은 근로시간과 마찬가지로 휴게시간도 예측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수진 노무사는 "근로계약서에 근로시간을 명시하는 이유는 근로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휴게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것을 넘어서 예측가능성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선 사례와 같이 매일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휴게시간에 대해서는 각 기업의 선의와 재량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준형 노무사는 "정부는 입법 취지에 맞지 않게 휴게시간을 과도하게 분할해 부여하거나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사용자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처벌 사례가 거의 없다"며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과로사회에서 탈출한다'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느끼는 제도 공백이 어떤 것인지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미숙씨 사례처럼 업주가 임의로 휴게시간을 공제하는 경우엔 소송을 통해 추가 수당을 받아낼 수도 있다. 2020년 서울행정법원은 시간선택제 공무원 A씨와 B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미지급 시간외 근무수당으로 A씨에게 112만 원, B씨에게 276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들의 경우 실제로는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고 야근을 했지만 시간외 근무수당이 하루 한 시간씩 일률적으로 공제된 채 들어오자 부당함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후부터 시간외 근무를 하면서 추가로 한 시간의 식사 및 휴게시간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 초과근무 시 휴게시간을 한 시간 공제하도록 하는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식사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나 문서 등이 있으면 증거로 남겨두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만약 한 시간의 식사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할 경우 '공짜 노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근거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식사시간을 줄이거나 없애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회사 차원의 방침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노동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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