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스텝

자이언트 스텝

입력
2022.06.1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급등과 연방준비제도의 '자이언트 스텝' 우려로 뉴욕증시 주요 지수가 일제히 폭락했던 지난 13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관계자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고물가로 세계 경제가 홍역을 앓으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이런저런 ‘스텝’이 유행어가 됐다.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또는 인하), 빅스텝(0.50%포인트),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의 뜻을 요즘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더 세분화해 마이크로스텝(0.10%포인트), 울트라스텝(1.0%포인트), 점보스텝(2차례 이상 0.50%포인트 연속 인상)까지 회자될 정도다.

□ 지금은 마치 금리조정 공식처럼 여겨지는 베이비스텝을 정착시킨 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1987~2006년 재임)이다. 취임 후 연준의 물가관리 수단을 통화량에서 기준금리로 바꾼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목표금리를 공표하면서 0.25%포인트씩 소폭으로 조정하는 걸 즐겼다. 파급효과를 봐 가며 불확실성을 줄이자는 취지였는데 덕분에 시장의 신뢰가 높아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대다수 중앙은행이 베이비스텝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린스펀 이래로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건 1994년 11월, 빅스텝은 2000년 5월이 마지막이었다.

□ 역대로 금리조정 폭이 늘 1%포인트 밑에서만 움직인 건 아니다.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당시 13%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을 잡기 위해 취임 두 달 만인 그해 10월 6일 토요일 임시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4.0%포인트나 올렸다. 갑자기 뛴 금리로 주식과 집값이 폭락했는데 지금도 이를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볼커의 초강수는 이후 미국 경제 장기호황의 초석이 됐다.

□ 한국에서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향후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혀 시장을 놀라게 했다. 발언 직후 한은이 “원론적 입장”이라고 서둘러 진화했지만 요즘 시장 상황은 또 달라졌다. 만약 연준이 연말까지 계속 점보스텝을 밟으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3.0%를 훌쩍 넘어선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은 늘 외화유출 위험을 부르는데, 지금 1.75% 기준금리를 쥔 한은이라고 계속 베이비스텝을 고집할 수 없게 된다.

김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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