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생일 같은 1124명 얼굴 일일이 대조... 42년 만에 쌍둥이 언니·부모님 찾은 입양아

입력
2022.07.05 04:30
수정
2022.07.05 10:3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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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소개 김미주씨, 가족 상봉 눈앞]
경찰 의뢰 한 달 만에 극적으로 부모 찾아
서류 정보 달랐지만, '쌍둥이' 결정적 단서
닮은꼴 언니, 3D 시스템으로 동일인 판정
DNA 채취·대조... 국과수 "친자 맞다" 확인
SNS로 첫 소통, 조만간 한국서 상봉 예정

해외입양인 김미주씨가 여덟 살 무렵 찍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학교를 다니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갔다. 김미주씨 제공

해외입양인 김미주씨가 여덟 살 무렵 찍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학교를 다니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갔다. 김미주씨 제공

“김미주씨 부모님 찾았습니다!”

지난달 17일 수화기 너머 박현일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은 한껏 들떠 있었다. 이름만 겨우 알아내고 다시 미국으로 발길을 돌렸던 해외입양인 줄리 비엘(한국명 김미주ㆍ43)씨의 친부모를 한 달 만에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부모님이 지금 경찰서로 온답니다. 100% 맞는 것 같아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관련기사: 42년 만에 알아낸 그리운 이름… “엄마 아빠, 저 닮은 손주들 보여드리고 싶어요”)

부모는 친딸 입양사실도 몰랐다

김미주씨 어머니가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경찰서 사무실에서 미주씨의 사연이 실린 한국일보 기사를 읽고 있다. 원다라 기자

김미주씨 어머니가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경찰서 사무실에서 미주씨의 사연이 실린 한국일보 기사를 읽고 있다. 원다라 기자

실종팀 문상태 경위는 그날 오전 미주씨 친어머니 A(69)씨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1979년에 따님을 낳은 적 있나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딸 쌍둥이를 마포구 이순니조산소에서 출산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따님이 부모님을 찾아 미국에서 왔었어요. DNA 채취가 필요한데 경찰서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부는 오후 4시 한달음에 마포서로 달려왔다. 아버지 B(74)씨는 지팡이에 기대 딸이 자신들을 찾겠다며 만든 전단을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검사할 것도 없이 한눈에 알아보겠어요.” 어느새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김미주씨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한국사회봉사회가 1983년 4월 친부모 정보를 요구한 미주씨 양부모 질의에 회신한 편지. "정보 제공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원다라 기자

김미주씨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한국사회봉사회가 1983년 4월 친부모 정보를 요구한 미주씨 양부모 질의에 회신한 편지. "정보 제공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원다라 기자

부부가 전한 사연은 이랬다. 부모는 둘째 딸이 해외로 입양된 사실조차 몰랐다. A씨의 말이다. “임신 기간 쌍둥이를 가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둘을 낳고 사흘 후 조산소를 나서는데, 시어머니가 ‘네가 첫째를 안고 가라’고 하더니, 둘째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어요.” 시어머니는 집안 사정도 어려운데 애 셋(오빠 포함)을 어떻게 키우냐며 미주씨를 부잣집에 보냈다고 했다. 남편에게 결혼반지와 목걸이를 주고 둘째를 찾아 오라고 했지만, 입양 갔다던 그 집에 미주씨는 없었다. 아무리 둘째 딸의 행방을 물어도 시어머니는 몇 해 전 숨질 때까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딸은 이따금 꿈에 나타났다. 40년이 지나도록 쌍둥이 언니와 병원에 나란히 누워 있던 갓난이 모습 그대로였다. 부부는 미주씨가 한국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거니 했다. 가난 탓에 시어머니를 말리지 못했지만, 이후 형편이 나아지면서 후회는 더욱 밀려 왔다. A씨는 “평생 한이 됐다”며 이야기 내내 가슴을 쳤다.

김미주씨 양부모가 입양 직후인 1979년 12월 생후 3개월 된 미주씨를 안고 있다. 김미주씨 제공

김미주씨 양부모가 입양 직후인 1979년 12월 생후 3개월 된 미주씨를 안고 있다. 김미주씨 제공

미주씨가 어떻게 입양기관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른다. 미주씨 양부모는 1983년 4월 그를 입양 보낸 한국사회봉사회에 친부모 정보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미혼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며, 한국문화 특성상 친부모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숨어 버려 정보를 알 수 없다”는 회신이 전부였다. 미주씨가 들고 온 입양서류 속 부모 정보와 실제 이름이 달랐던 이유다.

기적 가능케 한 키워드 '쌍둥이'

김미주씨는 5월 4일 친부모를 찾아 달라며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았다. 원다라 기자

김미주씨는 5월 4일 친부모를 찾아 달라며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았다. 원다라 기자

경찰이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었던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미주씨가 건넨 서류에는 부모의 성(姓)만 쓰여 있었다. 입양기관을 통해 확인한 서류상 부모 이름은 김석X(당시 28), 임정X(26). 현재 나이대를 위 아래 다섯살까지 넓혀 전국을 뒤져봐도 이런 이름의 부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박 팀장은 “찾을 수 없다”고 전하려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때마다 한국말도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마포서로 와 “도와 달라”고 했던 미주씨의 간절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다음 단서는 쌍둥이. 입양서류에는 “쌍둥이 중 후둥이(동생)”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이라면 같은 생년월일과 외모를 가진 여성이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경찰은 5월 16일 특정조회 시스템에서 1979년 ○월 ○○일생 여성 1,124명을 추려냈다. 팀원들은 야근이나 짬 날 때마다 미주씨 얼굴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닮은 사람을 몇 번이나 훑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장진명 경장의 눈썰미가 빛을 발했다. 하관과 눈썹이 비슷한 언니 희주(가명)씨를 발견한 것. 그런데 주민등록번호 생일이 미주씨보다 이틀 빨랐다. 그에게는 남자 형제(오빠)도 있었다. ‘이미 딸이 있는데, 또 딸 쌍둥이가 태어나 아이를 보냈다’는 서류 내용과 분명 달랐다.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 김세연(왼쪽부터) 순경, 이강석 경사, 박현일 팀장, 문상태 경위, 이장호 경장. 원다라 기자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 김세연(왼쪽부터) 순경, 이강석 경사, 박현일 팀장, 문상태 경위, 이장호 경장. 원다라 기자

그래도 너무 닮았다는 아쉬움에 경찰은 5월 27일 경찰청 ‘3D 얼굴 인식 시스템’에 대조를 의뢰했다. 미주씨에게서 연령대별 사진을 받아 시스템에 넣었다. 지난달 15일 받아든 결과는 일치율 74%. 통상 70% 이상이면 ‘동일인’으로 본다고 한다. 다른 여성 사진들과의 일치율은 0~24% 수준이었다.

안심하기는 일렀다. 가족관계가 다른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수사팀은 희주씨 부모 거주지인 인천으로 향했다. 부재를 확인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이웃으로부터 부부의 연락처를 얻어 A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미련은 곧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박 팀장은 “3D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하도 답답해 ‘미래의 내 아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미주씨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부부의 얼굴을 합성해 봤는데, 어린 미주의 얼굴이 보였다”고 했다.

딸과 부모는 지근거리에 있었다

김미주씨가 5월 5일 입양서류에 출생지로 기재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일대에서 친부모를 찾는 전단을 돌리고 있다. 배넷 제공

김미주씨가 5월 5일 입양서류에 출생지로 기재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일대에서 친부모를 찾는 전단을 돌리고 있다. 배넷 제공

DNA 채취 열하루가 지난 지난달 28일, 미주씨는 그토록 바라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문서를 손에 넣었다. “친자관계가 성립될 확률은 99.9999%임.” 사실 부모님과 그는 가까이 있었다. 미주씨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5월 종로의 한 호텔에서 보름간 머물렀다. 알고보니 부모님은 이 호텔에서 1.2㎞ 떨어진, 천천히 걸어도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사업체로 매일 출근했다.

부모를 찾았다는 경찰의 구두 통보를 듣고 미주씨는 “믿겨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감격스럽기도 했으나 생부ㆍ생모를 보고파 했던 그 시간들, 힘겨웠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이야 가정을 꾸려 두 아들(8세, 4세)을 뒀고, 또 IT 애널리스트로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인생 경로는 순탄치 않았다. 양부모는 미주씨가 네 살 때 이혼했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을수록 혈육에 대한 그리움의 농도는 짙어졌다. “늘 친부모를 생각하며 어딘가 나와 똑닮은 쌍둥이가 있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오빠가 있었으면도 했고요. 그 일이 진짜 일어났네요.”

"부모님 가슴에 꽃 달아드릴 날 기다립니다"

김미주씨가 직접 만든 부모 찾기 전단. 미주씨는 5월 한국을 찾아 서울 마포구 대흥동을 중심으로 직접 전단을 돌렸다. 김미주씨 제공

김미주씨가 직접 만든 부모 찾기 전단. 미주씨는 5월 한국을 찾아 서울 마포구 대흥동을 중심으로 직접 전단을 돌렸다. 김미주씨 제공

이제 부모와 자식은 42년의 시간을 뛰어넘으려 한다. 긴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양쪽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딸의 생존 소식에 눈물을 쏟았던 부모는 처음엔 만남을 썩 반기지 않았다. B씨는 경찰서에 다녀온 후 사흘 밤낮을 소파에서 꼬박 지새웠다. A씨 역시 “엄마 노릇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망설였다.

딸은 딸대로 “그들(부모)이 아직 나를 만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미주씨가 평정심을 되찾은 건 기자가 “아버지가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다”고 귀띔한 뒤였다. 그는 “내가 한국에 가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느냐”며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잠 푹 주무시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해외입양인들을 돕는 모임 배넷의 김유경 대표는 4일 “보통 언론에는 해외입양인이 친부모와 만나 끌어안고 기뻐하는 ‘해피 엔딩’ 장면만 나오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부모는 그간의 자책과 미안함에, 입양인은 친부모가 자신을 다시 거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렵게 가족을 찾고도 상봉을 꺼린다는 것이다.

김미주씨 42년 만에 친부모 찾기까지. 그래픽=김대훈 기자

김미주씨 42년 만에 친부모 찾기까지. 그래픽=김대훈 기자

모녀는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나마 생전 처음 대화를 나눴다. A씨는 “보고 싶고, 미안하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미주씨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부모님에게 드릴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고 들었어요. 먼 길을 돌아왔으나 나를 낳아주신 분들께 꼭 꽃을 선사할 겁니다.”

가족은 조만간 한국에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엔 미주씨의 두 아들과 남편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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