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벼워진' 대통령 말의 무게

입력
2022.07.19 04:30
수정
2022.07.19 06:3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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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완공을 목표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7일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던 가림막이 대부분 제거되면서 파란색 유리창도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0월 완공을 목표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7일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던 가림막이 대부분 제거되면서 파란색 유리창도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가 결국 세종청사 신청사(중앙동)에 ‘대통령 임시 집무실’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만 연말에 중앙동으로 옮기고, 당초 계획했던 대통령 집무실은 1동 국무회의장 옆 기존 VIP 집무실을 활용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됐다. 본보의 ‘공약 후퇴’ 지적에 대통령실은 세종 집무실 설치는 계속 추진하는 만큼 “공약 파기가 아닌 재조정”이란 입장을 냈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 150억 원을 아끼고, 두 부처의 중앙 배치로 행정 효율성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댔다. 임시 집무실 설치를 밀어붙이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많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중앙동은 가장 높고(지상 15층), 덩치도 큰(연면적 13만4,000㎡) 세종청사의 맏형 격이다. 대통령이 더 자주 찾아, 구석(1동)이 아닌 업그레이드된 청사에서 근무하면 관심이 집중될 게 자명하다. 무엇보다 ‘인(in) 수도권’만 외치는 지방인재와 기업들을 붙잡아 두는 국토 균형발전의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울에 비해 소외감을 느끼는 세종청사 공무원의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돈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의 ‘공간’은 수도권 과밀화가 극심한 한국에선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지닌다. 숫자만 봐도, 국토 12% 면적에 인구 50%, 생산(GRDP) 53%, 100대 기업 본사 86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면 출산율(0.78명)은 전국 평균(0.84명)을 밑돌고, 교통혼잡비로만 매년 36.8조 원이 증발한다. 정부는 나라살림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만, 국토 불균형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좀먹는 걸림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새 정부 비전부터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다. 또 대선후보 시절엔 “세종 집무실에서 격주로 국무회의를 개최하겠다” “한 달에 한 번씩 중앙지방협력회의를 갖겠다” ”세종을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 등 지방우대 공약을 셀 수 없이 내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세종청사 중앙동 임시 집무실 설치’가 바로 윤 대통령 철학의 소산인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외침을 또렷이 기억하고,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는 그래서 혼란스럽다. 네 차례 해명자료를 내면서도 약속 번복과 계획 변경에 사과나 유감을 표하는 정부 입장은 일절 없었다. 그저 “공약 파기는 아니다”라는 말만 되뇔 뿐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품격 못지않게 무게감이 정치적 자산임을, ‘핵심관계자’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정민승 사회부 차장

정민승 사회부 차장


대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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