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벗어나야 할 '성공의 덫'

입력
2022.08.03 00:00
26면

검사에겐 비타협적 엄정수사가 최선
대통령은 타협과 조정이 더 중요
윤 대통령, 검사성공방식 벗어나야

윤석열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에 정치학 경영학 사회학 등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혔던 제임스 마치(James March)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어떤 조직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과거의 성공 방식만 반복하지 말고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교수에 따르면, 과거 특정한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던 기업이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 방법만 활용할 경우,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져 끝내는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례로 필름 카메라 시절 필름과 인화지 분야에서 최고 기업으로 손꼽히던 코닥과 2G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는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폰 등장 이후에도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다가 결국 몰락했다. 이처럼 성공한 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성공의 덫'은 정치 분야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나라 검사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검사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으로 정권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수사를 통해 검찰총장도 되었고, 결국 헌정사상 검찰 출신 첫 대통령이 되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비타협적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윤 대통령에게 성공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 모습을 보면 검사로서의 성공방식이 대통령 역할 수행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비타협적인 태도가 법을 집행하는 검사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겠지만 갈등을 조정하고 필요한 경우 야당과 타협하며 새로운 법과 원칙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대통령에겐 더 이상 성공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은 확실히 검사 시절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집행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실례로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른 엄정한 수사만을 강조했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파업에 이르게 된 구조적 원인보다는 파업의 불법성과 이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에만 무게를 두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아직 검사 시절의 성공 방식에만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는 당연히 주어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만 잘하면 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주된 역할은 기존의 법과 원칙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보완할 점은 없는지 살피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야당과 타협하여 새로운 법과 원칙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물론 원칙에 따라 비타협적으로 법을 집행하고 수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 역사를 봤을 때에도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많은 '범법자'들이 있었다. 비타협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철저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새로운 법과 원칙을 만들어나가는 정치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과거 검사로서의 성공을 가져다준 '성공의 덫'에서 벗어나 변화된 자리에 맞게 새로운 국정운영 방식을 탐색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공의 덫'에 빠진 기업이 몰락하면 그 피해는 일개 기업에 국한하지만, 대통령이 '성공의 덫'에 빠져 실패하면 그 피해는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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