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표시냐, 거리두기냐…나경원에 '늦은 보직' 준 尹

입력
2022.10.21 08:00
수정
2022.10.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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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꼬집은 소금이나 설탕 따위의 양념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올린 양을 의미합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때로는 꼬집 하나에 음식 맛이 달라지듯, 이슈의 본질을 꿰뚫는 팩트 한 꼬집에 확 달라진 정치 분석을 보여드립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에게 열린 기후환경대사 임명장 전수식을 마치고 박진 외교부 장관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에게 열린 기후환경대사 임명장 전수식을 마치고 박진 외교부 장관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각별한 신뢰의 표현이냐, 미묘한 거리두기냐.'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중진 나경원 전 의원에게 장관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 부위원장, 대외직명대사인 기후환경대사 임무를 연달아 맡겼다. 국민의힘 당권레이스가 서서히 가열되는 와중에 당권 주자인 나 전 의원이 '늦은 보직'을 받자 여의도가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시선 ①각별한 인연에 '윤심' 쏠렸다?

나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서울총괄선대본부장으로 윤 대통령을 도우며 '든든한 지원군'을 자임해왔다. 윤 대통령과 인연도 각별하다. 나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윤 대통령(79학번) 후배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남편 김재호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윤 대통령과 가까워 종종 모임을 갖는 사이라고 전해진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학시절 윤 대통령과 나 전 의원, 김 부장판사가 같은 모임에서 공부를 하며 친분이 깊어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이 지난 14일 저출산위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이어 20일 기후환경대사 임명장을 받자 정치권이 "드디어 윤심(尹心)이 향했다"며 술렁인 이유도 그래서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저출산위는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윤 대통령 관심 사안인 저출산 문제에 관한 범부처 계획을 심의하는 만만치 않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기후환경대사도 임기 1년의 비상근 자리이지만, 다음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정상회의에 대통령 특별사절로 참석하는 등 상징성이 만만치 않다.

이를 두고 나 전 의원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는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여성 중진 의원을 배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도 "윤 대통령이 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저출산위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서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나 전 의원에게 중책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시선 ②늦은 보직… 과열된 당권 경쟁에 달래기?

반대의 시선도 있다.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교통정리'에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주호영·김기현·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나 전 의원 등은 유력 또는 잠재적 당권주자로 분류된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인지도가 높은 나 전 의원이 레이스에서 빠지는 것이 친윤계 후보의 당선에 유리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심이 눈에 보이게 작동할 수는 없겠지만, 대통령이 보직을 맡겼는데 전당대회로 직행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의 바램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나 전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출산위 부위원장은) 비상근 자리이기 때문에 (당권 도전에) 어떤 제한이 있지는 않다"며 당 대표 출마 의지를 접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나 전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도 향후 행보에 대해 "미래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장관 대신 다소 무게감이 덜한 비상근 직책으로 전당대회 교통정리를 하기는 역부족이라는 해석도 있다. 나 전 의원은 현 정부 초기 외교부, 복지부 등 내각 장관 하마평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4선 중진 출신인 데다 외교통일위·보건복지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 등 여러 상임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18개 부처 장관 중 여성 비중이 17%(3명)에 그치는 상황에서 '여성 장관 구인난'을 해소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도 강점이었다. 하지만 매번 낙점을 받지는 못했다. 재산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윤 대통령이 늘 막판에 주저한다는 전언도 들리고 있다. 서초동에선 내년 대법관 인사에서 나 전 의원 남편인 김 부장판사가 후보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들린다.

나 전 의원도 6월 대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대통령 취임식 때 좌석 한 자리도 받지 못했다며 섭섭한 감정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이처럼 두 사람 간의 미묘한 거리두기 분위기가 이번 인선으로 귀결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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