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와 인강이 그랬듯... 앞으론 AI가 교육 판을 뒤흔든다

입력
2022.10.29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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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용 AI 앱 빠른 속도로 저변확대
토익·회화·면접 기술에도 AI 기술 이용
소외 계층에 저비용 맞춤형 교육 가능
검증 안 된 AI에 학습 일임하는 건 한계

고등학생 황시은(왼쪽)양과 베트남의 한 학생이 인공지능(AI) 학습 앱 '콴다'를 이용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황시은·매스프레소 제공

고등학생 황시은(왼쪽)양과 베트남의 한 학생이 인공지능(AI) 학습 앱 '콴다'를 이용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황시은·매스프레소 제공

고등학교 1학년생 황시은(16)양의 꿈은 간호사다. 간호대 입학을 목표로 매일 4시간씩 EBS 인터넷 강의(인강)를 들으며 '열공' 중이다.

여느 고1이라면 방과후 국영수 학원을 여기저기 도느라 바쁘겠지만, 황양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황양이 사는 경남 창녕군은 입시학원이 많지 않고, 만족할 만한 학원 수업을 듣기도 쉽지 않다. 1대 1 과외도 어려운 것이, 대학생 언니오빠나 개인교습 선생님을 만나려면 수도권이나 큰 도시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AI가 사람을 가르친다

그런데 사교육 사각지대에 사는 황양에게도 사실은 비장의 무기가 있다. 학원이나 과외 대신 2년 전부터 인공지능(AI) 기반의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애용 중이다. 모르는 수학 문제를 스마트폰으로 사진만 찍어 보내면 AI가 자세한 문제 풀이를 보내주는데, 이제는 수학 공부에 없어서는 안 될 '친구'로 자리 잡았다. 영어 내신 공부도 AI 앱을 활용할 수 있어, 교과서 본문을 암기하거나 변형 문제를 푸는 데 효과적이다. 황양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친구한테 카톡하는 것처럼 편하게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며 "풀이법도 똑똑한 대학생들이 자세하게 설명해준 것이라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통해 인간의 지각·학습·추론 능력을 모방하던 AI는 이제 사람을 직접 가르치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하며, 오프라인 수업과 인터넷 강의 위주였던 교육 시장을 바꾸고 있다. 1990년대 EBS 수능강의가 교육 격차 해소에 기여했고, 2000년대 인강 열풍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양질의 콘텐츠를 대량 공급했던 것처럼, 개인별 맞춤형 실시간 교육에 최적화된 AI는 앞으로 교육시장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가 앞당긴 에듀테크 전성시대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 전망. 그래픽=신동준 기자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 전망. 그래픽=신동준 기자

최근 교육시장의 대세는 에듀테크(Edutech)이다. 에듀테크는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교육 서비스에 AI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블록체인 기술 등을 접목해 새로운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산업을 뜻한다.

28일 교육분야 시장조사업체 홀론IQ에 따르면,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2020년 2,270억 달러(약 322조 원)에서 2025년 4,040억 달러(573조 원)로 2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에 돈을 많이 쓰는 주요국에서 교육산업이 이미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듀테크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덩치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 활용에 익숙한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의 등장은 에듀테크 급성장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다. 수학 학습 앱 콴다의 운영사인 매스프레소가 올해 3월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각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디지털 교육에 대한 '세대 차이'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 무언가"를 묻는 질문에 학부모의 54.4%가 '노트와 필기구'를 택한 반면, 학생의 59.8%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골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에듀테크 활성화에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 됐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디지털 교육 전환을 급격히 앞당겼다"며 "팬데믹이 끝나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AI 교육 쪽으로 빠른 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 풀이, 면접 도우미, 발음 교정 코치까지

인공지능(AI) 학습 앱 콴다는 광학문자 인식기술(OCR)를 활용해 사진으로부터 텍스트의 위치 및 정보를 추출한다. 매스프레소 제공

인공지능(AI) 학습 앱 콴다는 광학문자 인식기술(OCR)를 활용해 사진으로부터 텍스트의 위치 및 정보를 추출한다. 매스프레소 제공

사실 에듀테크는 생각보다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앞서 황시은양이 사용하는 수학 학습 앱(콴다) 사례에서 보듯, 이제는 중고생 수험 학습에서 AI 기반 앱이 상당한 수준으로 저변을 넓힌 상태다. 대학 면접을 도와주는 AI 기술도 있다. 몬스터 T라는 앱은 수험생이 학교생활기록부를 앱에 입력하면 이를 분석해 실제 면접에 나올 만한 문제를 제공하고, 표정이나 시선처리를 분석해 면접에 유리한 자세를 제시해 준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을 겨냥한 AI 앱도 출시됐다. 토익 교육 플랫폼 '산타'는 딥러닝 기술로 점수가 가장 빨리 오를 문제를 추천해 최단시간 내에 점수를 향상시키는 앱이다. 이용자가 어떤 유형의 문제를 많이 틀리는지, 앞으로 어떤 오답을 고를지를 예측해 취약 부분을 집중적으로 반복 학습하는 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AI 음성인식 영어회화 학습 앱 '스픽'은 전화영어의 AI 버전이다. 100만 명 이상의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발음 코치가 영어 발음을 교정해 준다.

불가능했던 '저비용 맞춤'도 가능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31일 앞둔 17일 오전 대구 북구 경상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대구=뉴시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31일 앞둔 17일 오전 대구 북구 경상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대구=뉴시스

이전 학습법과 비교해 AI 기반 학습의 최대 혁신 포인트는 '저비용 맞춤형'이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 제공자(강사)의 능력과 그에 따르는 몸값이 가장 중요하던 과거 교육 시장에서 '비용'과 '맞춤'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였다. 양질의 강의를 싸게 들으려면 수백 명이 들어찬 대형 강의나 인강을 이용해야 했고, 그런 환경에서 맞춤이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AI가 인간 강사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며,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유튜브 '추천 영상'처럼 개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졌다. AI가 지금보다 더 발전한다면 교육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사는 학생이 AI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AI 앱이 실제 학습에 도움이 됐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팀(한상필 교수)은 2020년 3월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던 대구·경북 학생들의 AI 기반 학습 앱 이용 실태를 연구했다. 그 결과, 감염이 처음 시작된 6주간 학생들의 학업 수준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AI 앱 사용한 6주차 이후부터는 학생들이 학업 수준을 만회하기 시작했다.

AI 교육, 밝은 면만 있지는 않아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에듀테크 코리아 포럼·페어'에서 아동을 동반한 참관객이 AI 활용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에듀테크 코리아 포럼·페어'에서 아동을 동반한 참관객이 AI 활용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수천 년에 걸쳐 검증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이용하는 대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AI를 교육에 활용한다는 것에 불안해하는 반응도 있는 게 사실이다. AI는 학습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에 기반한 학습 경로를 추천하게 되는데,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떤 방식으로 예측하는지에 따라 학생의 진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0년 영국에서는 코로나19로 졸업시험을 치르지 못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AI 평가를 통해 성적을 부여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AI는 부모 소득수준이 낮은 공립학교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낮은 학점을 줬다. 이는 AI가 소속 학교의 과거 성적을 주요 통계로 사용해 학점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웨인 홈스 영국 유티버시티칼리지런던(UCL) 지식연구소 교수는 지난달 열린 '2022 에듀테크 코리아 포럼'에서 "AI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 효과나 윤리 문제는 무시되고 있다"며 "AI 교육이 인간적 측면을 제외하고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I가 교육 기회에서 소외받은 학생들에게 꽤나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난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AI 앱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의 고등학생 A(17)군은 "내성적인 편이라 학원에서도 질문을 안 하고 집에 와서 혼자 문제를 푸는 편인데, AI 앱으로는 부담 없이 모르는 것을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곧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 김모(18)양도 "과외를 할 여유가 없어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AI 앱이 도움이 돼서 든든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AI가 성적을 무조건 올려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더 배우고 싶은데 환경상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든든한 친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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