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서, 참사 후 안전우려 보고서 없애... 지휘부 관심은 '집회·마약 단속'

입력
2022.11.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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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발생하자 보고서 '증거인멸' 시도 정황
서울청장, 용산서장 모두 집회 관리에 초점
현장 투입 137명 중 50명이 마약범죄 단속

2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규명을 위해 꾸려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소속 수사관들이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를 압수수색한 후 건물을 나서고 있다. 최주연 기자

2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규명을 위해 꾸려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소속 수사관들이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를 압수수색한 후 건물을 나서고 있다. 최주연 기자

서울 용산경찰서 정보 간부들이 올해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 내부 ‘정보 보고’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것도 참사 당일 현장 질서 관리를 소홀히 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날 경찰 지휘부의 관심은 ‘집회 관리와 마약 단속’에 있었다.

증거인멸? 규정 따른 적법 절차?

특수본 관계자는 6일 “용산서 간부급 정보 담당 경찰관들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이들이 일선 정보관들의 안전사고 관련 보고를 묵살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보고서 삭제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삭제 과정에서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정보관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수본은 2일 용산서 정보과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서 측은 혐의를 부인하며 적법한 절차에 의해 보고서를 없앴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참사 당일 모든 정보보고서를 공개하라”는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 요구 역시 거부했다. “수집ㆍ작성한 정보가 그 목적이 달성돼 불필요하게 되면 지체 없이 폐기해야 한다”는 ‘경찰관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핼러윈 질서 유지’는 경찰 관심 밖

진보 진영 단체 '촛불전환행동'이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LED 촛불을 들고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 진영 단체 '촛불전환행동'이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LED 촛불을 들고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질서유지 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정보 보고가 ‘윗선’으로 전달되지 않은 탓인지 참사 당일 경찰의 주된 관심은 용산 대통령실 인근 집회에 집중됐다.

지난달 29일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보수ㆍ진보성향 단체의 집회 동선이 겹쳐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자,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집회 현장을 끝까지 직접 지휘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휴일에 출근했다가 양측 집회가 불상사 없이 마무리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 오후 8시 36분 퇴근했다.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를 우려하는 첫 112신고가 2시간 전(오후 6시 34분) 접수됐지만, 김 서울청장에게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는 전무했다.

집회 외에 이날 경찰 수뇌부가 신경 쓴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마약 범죄 단속이다.

김 서울청장은 참사 전 112상황실장으로부터 ‘핼러윈 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를 받고도 질서유지와 관련한 별도 지시를 하지 않았다. 일선 부서에 마약 단속 인력 투입이 가능한지만 물었다. 결국 참사 당일 현장에는 마약 단속을 하는 형사가 50명이나 배치됐다. 현장 투입된 경찰관 137명 중 69명이 사복 경찰이었다. 마약 단속 인력 50명에 더해 생활안전(9명), 112(4명), 외사(2명), 여성청소년(4명) 등 질서 유지와 무관한 인력이 절반을 넘었던 셈이다.

나머지 68명의 정복 경찰 가운데 오후 9시 30분 뒤늦게 투입된 교통기동대(20명)를 빼면 인원 통제 등 질서 유지는 교통(6명), 이태원파출소(32명), 관광경찰대(10명) 등 고작 48명이 전담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경찰의 날 행사에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달라”고 당부했고, 사흘 뒤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도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경찰이 대통령 기조에 발맞추려 애를 쓰다가 엄청난 오판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지영 기자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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