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맞나요" 베트남어· 태국어로 시끌벅적한 '대구 속 동남아'

입력
2022.11.21 04:00
20면

[우리 동네 전통시장] <2> 대구 와룡시장
시장 내 외국인 점포 9곳, 인근에 30여곳
손님 10명 중 3명은 동남아 등 외국인들
성서공단 근로자와 계명대 유학생 영향
'캠핑와용' 브랜드로 밀키트 개발해 인기
대구 밖 고객까지 '글로벌 특화시장' 거듭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대구 와룡시장 전경.

대구 와룡시장 전경.

지난 17일 오후 5시 대구 달서구 신당동 와룡시장에 들어서자 펄럭이는 만국기가 눈에 들어왔다. 폭 4m 골목 양쪽으로는 족발집과 잡화점, 과일가게 등 여느 전통시장과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는 상점들이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하지만 낯선 풍경도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들리던 시끌벅적하던 경상도 사투리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베트남어와 태국어 등으로 바뀌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언어가 적힌 '아시아마트'도 눈길을 끌었다. 만국기가 펄럭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국기가 대구 달서구 신당동 와룡시장 골목을 수놓고 있다.

만국기가 대구 달서구 신당동 와룡시장 골목을 수놓고 있다.


TK 공인 '글로벌 특화시장'

와룡시장은 '글로벌 특화시장'이다. 주말이면 대구는 물론 경북 곳곳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로 떠들썩하다. 시장은 대지 1만5,083㎡, 연면적 2만5,718㎡로 141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와룡시장에서 외국인이 운영하는 마트만 8곳이다. 음식점은 베트남쌀국수 가게 1곳이지만, 시장 주변에 형성된 식당까지 합치면 30곳이 넘는다. 이슬람인을 위한 할랄마트도 있다.

매대에 내놓은 채소와 과일은 다소 낯설다.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여주와 메추리알만 한 양파, 짧고 굵은 오이, 바나나꽃 등 동남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공수된 것들이다. 가게 선반과 냉장고에는 G7커피와 알코올 함량 30%인 베트남 소주, 이름을 알 수 없는 향신료와 생선 등이 빼곡했다.

대구 와룡시장 아시아마트 상인 윤혜정씨가 자신의 가게에 진열된 베트남 소주를 가리키고 있다. 한국 손님에게 인기가 가장 높은 상품이라고 한다.

대구 와룡시장 아시아마트 상인 윤혜정씨가 자신의 가게에 진열된 베트남 소주를 가리키고 있다. 한국 손님에게 인기가 가장 높은 상품이라고 한다.

2010년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국내에 정착한 아시아마트 주인 윤혜정(42) 씨는 "베트남 친정 부모님이 고향에서 양파 등 종자를 가져와 대구 외곽의 밭에서 직접 키워 팔고 있다"며 "커피와 라면 등 100개가 넘는 베트남 제품을 팔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베트남 소주는 한국 손님들에게 최고 인기 품목"이라고 말했다. 인근 성서공단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는 베트남인 팜 롱(36)씨는 "베트남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동남아 국가 출신들이 고국에서 사용하던 식재료를 구하려면 무조건 와룡시장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선주 와룡시장상인회장은 "와룡시장 손님 10명 중 3명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구 와룡시장. 그래픽= 강준구 기자

대구 와룡시장. 그래픽= 강준구 기자

와룡시장이 글로벌 전통시장으로 거듭난 것은 인근 성서산업단지공단과 계명대의 영향이 크다. 성서공단과 계명대로 넘어온 동남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들이 최근 10년간 크게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와룡시장 내에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대구 밖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까지 시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시장이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이 와룡시장 골목 양편으로 늘어선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오가고 있다.

시민들이 와룡시장 골목 양편으로 늘어선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오가고 있다.


캠핑용 밀키트도 '배달앱'으로 판매

1993년 처음 문을 연 와룡시장은 2006년 전통시장으로 등록됐다. 내국인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도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사업으로 출범한 시장육성사업단은 손님에게 찾아가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밀키트'에 공을 들였다.

와룡시장 점포 50여 곳이 결성한 상인협동조합은 지난 8월 '캠핑와용' 브랜드로 바비큐 꼬치세트 새우감바스 등 밀키트 6종을 출시했다. 캠핑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먹거리 구입과 조리가 쉽지 않은 점에 착안했다. 상인들이 시장 내 공유주방에서 제작한 후 배송하는 방식이다. 제조 시간은 10분에 불과해 대구형 공공배달앱 '대구로'를 통해 주문과 배송도 가능하다.

김승길 와룡시장 문화관광형육성사업단장이 와룡시장의 브랜드인 밀키트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김승길 와룡시장 문화관광형육성사업단장이 와룡시장의 브랜드인 밀키트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와룡시장으로 캠핑와용'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나흘간 와룡시장에서 진행된 행사에서는 캠핑용 밀키트 할인 판매가 이뤄졌다. 글로벌 전통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러시아·일본·중국·베트남 등이 포함된 '세계민속체험'을 비롯해 '눈으로 맛보는 중국문화' 등 이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행사였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상권 회복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와룡시장 도약에 달서구도 힘을 보태고 있다. 달서구는 지난 9월 대구상공회의소, 와룡시장 상인회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브랜드 개발에 나섰다. 닭발과 족발, 떡볶이, 꼬마김밥, 두부, 회, 떡갈비 등을 판매하는 가게에 로고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김승길 와룡시장 문환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장은 "내년에는 가정용 밀키트 9종을 추가로 출시할 예정"이라며 "한발 더 나아가 전국배송이 가능한 디지털 전통시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선주 와룡시장상인회장이 점포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윤선주 와룡시장상인회장이 점포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대구= 글ㆍ사진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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