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돈, 골프보다··· 노화, 죽음 얘기해 보죠"

입력
2023.01.27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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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의과대학 시절 응급실에 실려온 노년 환자가 특정 약을 빼는 처방만으로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며 노인의학에 매료됐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기에 노년내과 진료를 위해서는 삶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자 제공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의과대학 시절 응급실에 실려온 노년 환자가 특정 약을 빼는 처방만으로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며 노인의학에 매료됐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기에 노년내과 진료를 위해서는 삶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자 제공

새해부터 노화와 죽음을 화두로 꺼냈다. 정희원(39)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와 유성이(58) 작가가 주인공이다. 각각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를 최근 펴냈다. 전화 통화로 만난 이들은 “우리가 늙어간다는 걸 알아야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희원 지음ㆍ더퀘스트 발행ㆍ280쪽ㆍ1만7,800원

정희원 지음ㆍ더퀘스트 발행ㆍ280쪽ㆍ1만7,800원


100세 철학자 김형석 비결은? 덜어내기

정희원 교수는 노화 연구에 ‘진심’이다. 서울대의대 내과 전공의 시절 노년 연구에 빠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땄다. 인문ㆍ사회학적 내공도 쌓았다. ‘소비 자본주의가 노화를 촉진한다’고 비판할 정도다. “고통과 불편이 줄어들수록 좋다는 자본주의의 전제가 옳다면 지금쯤 모두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야 한다. 하지만 전 국민 단위로 관찰했을 때 노화 지표인 신체활동량은 점점 줄고 복부비만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매섭다.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어떻길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술, 담배 등의 자극 중독,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마음 방황, 부족한 신체활동과 불균형한 식사가 몸과 마음을 늙게 한다. 그냥 노화도 아닌 ‘가속 노화’다. 하루는 24시간이건만 36시간, 48시간의 속도로 나이 든다. “돈을 빨리 벌어 은퇴하자는 파이어족, 새벽부터 자기계발에 나서는 미라클 모닝 등도 가속노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보들이 넘쳐 안타깝다. 우리 젊은 세대는 좋은 삶을 위해 보다 나은 정보를 접해야 한다.”

자극이 넘치는 외부 환경에 맞서 ‘내재역량’이라는 장벽을 키워야 한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개념을 정 교수가 국내 사정에 맞춰 재구성했다. 이동성(신체적 건강), 마음건강, 질병,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등 네 가지 요소로 이뤄졌다. 정 교수는 “내재역량을 잘 관리하면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처럼 번뇌는 적고 일상은 충만한 상태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핵심은 덜어내기 방식의 삶의 자세”라고 했다.

한국인은 특히 ‘나에게 중요한 것’을 파악하는 데 취약하다. 속도, 경쟁, 성취 담론은 넘쳐나지만 정작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삶의 목표가 없으면 일상은 주식, 술, 골프로 수렴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깊은 즐거움을 주고 정신을 고양시키며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늘 지금이 가장 이른 때입니다.”

유성이 작가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애 말기 죽음을 앞둔 노인을 돌본 체험을 책으로 썼다. 한 생명이 존엄하게 죽는 길을 밝히기 위해 '생애 말과 임종'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저자 제공

유성이 작가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애 말기 죽음을 앞둔 노인을 돌본 체험을 책으로 썼다. 한 생명이 존엄하게 죽는 길을 밝히기 위해 '생애 말과 임종'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저자 제공


어르신은 끝까지 원했다... 타인의 존중과 돌봄을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의 저자 유성이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박물관 학예사로 일하다 2019년 아버지의 외로운 죽음을 지켜봤다. “우물쭈물하다가 나도 그렇게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죽음을 연구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임종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여한 없이 살았다. 이제 편안히 죽고 싶다”는 학교 교장선생님 출신 환자(88)와 우정을 쌓았다. 그의 동의를 얻어 임종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환자는 품위 있는 죽음을 원했지만, 신체적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배변이 어려워져 소변줄을 달고, 섬망(환각) 증상이 찾아와 새벽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저자의 성실한 기록과 환자의 꾸밈없는 모습 덕분에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듯한 경험에 빠진다. 유 작가는 환자의 임종 순간을 ‘해냈다’고 표현한다. “마침내 임종의 고통을 통과해 삶의 순례를 끝까지 잘 마쳤다는 의미”에서다.

유성이 지음ㆍ멘토프레스 발행ㆍ319쪽ㆍ1만3,800원

유성이 지음ㆍ멘토프레스 발행ㆍ319쪽ㆍ1만3,800원

인간적인 죽음이란 무엇일까. 유 작가는 “임종을 앞둔 어르신은 연약한 존재로서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싶어 했다”며 “마지막까지 사람과 연결돼 돌봄과 존중을 받고 소통하다 죽는 것이 인간적 죽음”이라고 했다. 현대의 죽음은 주로 집 안이 아니라 병원에서 이뤄지기에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기회가 줄었다는 게 저자가 느끼는 아쉬움. “어린아이도 삶 안에서 죽음을 자주 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지인의 장례식장에 함께 조문 가기를 권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늙어가며 죽음에 가까워 진다. 따라서 새해이든, 연말이든 죽음을 생각하는 데 정해진 시기는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여러 관계 안에서 용서와 화해가 조금 쉬워집니다. 무엇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 작가가 전하는 말이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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