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원자로, 이래서 못 미덥다

입력
2023.01.26 18:00
수정
2023.01.26 19:35
26면

과거 시도했지만 상용화 불발 경험
경제성 한계 넘을 길은 안전성인데
“10억 년에 한 번 사고” 믿을 수 있나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이 상용화된 미래에 건설될 가동 시설을 예상해 그린 조감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이 상용화된 미래에 건설될 가동 시설을 예상해 그린 조감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과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뒤 원자력계는 ‘고유안전’이란 개념을 내놨다. 운전원이나 기기의 오류 때문에 출력이 급발진하거나 냉각에 실패한 게 사고 원인이었으니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원전 자체 안전 체계를 갖추자는 아이디어였다. 가령 비상전원 공급 없이도 대류 같은 자연현상으로 냉각시키는 피동안전 방식이 대표적인 고유안전 체계다. 피동안전을 적용하려면 원전이 작을수록 유리하다. 클수록 제거할 열이 많아 자연현상만으로 냉각이 어렵다. 1980, 90년대 선진국들은 그래서 소형 원자로 개발에 나섰다.

최근 정부와 원자력계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띄우는 모습에 기시감을 느낀다는 과학자가 적지 않은 게 이런 이유에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형 원전 확대에 부담을 느낀 각국이 다시 SMR로 일사불란하게 방향을 틀었다. 과거와 달라진 건 소형화를 구현하는 아이디어가 다양해졌고, ‘모듈’이란 말이 붙었다는 점이다. 원자로 규모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개를 만들어(모듈화) 서로 연결해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과거 소형 원자로는 실증의 어려움과 경제성에 발목 잡혀 상용화에 이르지 못했다. 도면에는 획기적 설계가 가득한데 정작 입증이 쉽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갈수록 유가가 올라 발전원의 경제성이 중요해지면서 원전은 도로 대형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미 예전에 손 놨던 기술을 다시 꺼내 새로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예전엔 공상과학 같던 기술이라도 지금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분명 있다. 화력발전은 물론 대형 원전도 줄여가야 하는데 그 자리를 신재생만으로 채우긴 아직 불충분한 만큼, 에너지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소형 원자로를 확보해둘 필요도 있다. 선진국에선 민간기업까지 나서서 소형 원자로를 다시 시도하고 있으니 에너지 빈국인 우리가 한가하게 쳐다만 보고 있기엔 불안하다.

생수 페트병을 2L짜리 하나 사는 것보다 500㎖짜리 4개 사는 게 당연히 더 비싸다. 기술이 향상되더라도 대형 원전이 갖는 ‘규모의 경제’ 장점을 소형 원자로가 단숨에 따라잡긴 어렵다. 이 한계를 넘는 확실한 길은 안전성 확보다. 소형 원자로가 대형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게 입증된다면 비싸더라도 지을 명분이 된다.

올해 첫발을 떼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단은 6년에 걸쳐 개발할 i-SMR에 대해 “중대사고가 10억 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라고 설명한다. 정말 그만큼 안전하면 원자력계가 예를 들 듯 도심 코앞에라도 못 지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i-SMR의 사고 확률은 실증되기 전까진 공학적 수치일 뿐이다. 해외 소형 원자로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개발 중이거나 막 가동해보는 단계다. 더구나 현존하는 대형 원전의 중대사고 확률 역시 10만 년에 한 번으로 충분히 낮은데도 안전성 우려가 여전하다.

1997년 개발을 시작한 국산 첫 소형 원자로 ‘스마트’는 2012년 설계 안전성을 인정받았지만 10여 년이 지나도록 상용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또 4,000억 원을 들여 i-SMR를 설계한다니 결국 “원자력계 밥줄 만들기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소형 원자로가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한 게 후쿠시마 사고와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원자력계 해명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이번엔 설계도 그리는 데 그치지 말고 당당히 안전성을 입증해 국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수십 년간 국가 연구개발비를 써온 과학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납세자에 대한 의무다. 자신 없다면 그 큰돈을 차라리 다른 데 쓰는 게 낫다.

임소형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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