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찍을수록 적자" 가정용 두배 가스요금에 우는 기업들

"기계 돌릴수록 적자"…가정용보다 두 배 높은 가스요금에 우는 중소기업들

입력
2023.02.06 04:30
수정
2023.02.06 13:5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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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 위치한 지피에스코리아 공장에서 창업자 김성모씨가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최동순 기자


"요즘 가스비 올랐다고 난리죠. 그런데 뉴스에서도 다 가정용 난방비 얘기만 하지, 산업용 가스비엔 관심이 없다고요. 진짜 문제는 이 산업용이에요."

(중소기업 창업자 김성모씨)


2일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 위치한 발포 플라스틱 업체 지피에스코리아의 공장 내부는 한겨울 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후끈한 열기가 넘쳐났다. 20개가 넘는 기계들이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제품을 찍어냈다. 그러나 바삐 돌아가는 공장을 바라보는 이 회사 창업자 김성모(72)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에너지 비용이 올라도 너무 올라, 물건을 찍을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 이미 계약을 맺은 물량이라 생산을 포기할 수 없어 기계는 계속해서 돌려야 한다.

이 공장은 액화천연가스(LNG)로 돌아간다. 요즘 가정용 가스요금이 급등해 가계의 지갑과 영혼이 한꺼번에 털릴 지경이지만, 그 비싼 가정용보다 2배 비싼 게 산업용 도시가스다. 2021년까지 ㎥당 500~600원(천안 소매가 기준) 수준을 유지하던 이 공장 가스 가격은 이듬해 1월 1,000원 고지를 돌파하더니, 지난해 말 드디어 1,500원(2022년 12월 1,518.9원)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왜 한국만 산업용 요금이 유독 비쌀까


도대체 산업용 가스요금 체계가 어떻기에 불과 2년도 안 돼 공장 연료비가 3배나 오르는 현상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한국의 특수한 가스요금 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업용 전기가 가정용보다 싸다'는 사실 때문에, 흔히 가스 쪽에서도 기업들이 더 싸게 쓸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완전 반대다. 산업용 가스요금은 가정용보다 훨씬 비싼데, 이건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대량 구매할수록 가격이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덕분에, 다른 나라에선 보통 산업용 가스가 가정용보다 저렴하다. 2021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세계 주요 에너지통계를 보면, 유럽의 가정용 대비 산업용 가격 비율은 영국 0.48, 프랑스 0.43, 독일 0.34다. 가정용의 3분의 1에서 절반 수준 값에 가스를 쓴다는 얘기다. 천연가스 생산국인 네덜란드(0.24)와 뉴질랜드(0.18) 기업들은 가정용의 20%만 지불한다.

산업용 가스요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산업 정책의 핵심 영역이다. LNG 등 화석연료가 필요한 산업은 주로 제조·가공업인데, 산업용 가스요금을 낮게 유지해야 해외로의 공장 이전(오프쇼어링)을 막고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창의융합대학 학장)는 "산업체는 가정보다 가스를 많이 쓰지만 배관 등 설비 비용은 오히려 적게 든다"며 "한 번에 많이 사용하는 산업용 가격이 가정용보다 낮은 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과거 한국 가스요금 체계는 산업용과 가정용 비용을 거의 비슷하게 매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2020년 8월 정부가 산업용·가정용 도시가스 요금 변동방식을 이원화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가정용 요금은 정부 통제로 매번 동결됐지만, 산업용 요금은 국제유가에 따라 등락을 반복했다.

용도별 가스요금 조정 과정


가정용산업용
요금 조정 조건원료비가 ±3%를 초과해 변동된 경우 2개월마다 요금을 조정
원료비가 ±3%를 초과해 변동하지 않아도 매월 조정
승인 과정가스공사가 요금조정안을 보고하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민 생활 안정 등을 고려해 승인 여부 결정
누적 동결 건수 2021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7차례 동결
한 차례도 동결된 바 없음

당시 이런 식의 가스요금 이원화는 △민심과 물가를 신경 써야 하는 정부와 △적자(미수금)를 줄여야 하는 한국가스공사가 찾은 일종의 합의점이었다. 전체 도시가스의 44%에 해당하는 산업용 등에 대해선 '원가 연동제'를 적용하고, 가정용에선 정부가 계속 통제권을 쥐도록 한 것이다.

실제 정부는 국제 LNG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2021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총 7차례 "가정용 단가를 인상해 달라"는 가스공사의 요청을 거부하고 요금을 동결했다. 반대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용 가스요금 가격 조정 건의를 반려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국제 가격 변동에 노출된 산업용 가스요금

이 과정을 요약하자면 2020년 8월의 요금 체계 변경으로 인해, 산업용 가스 가격은 국제유가 변동에 사실상 완벽히 노출돼 버린 것이다. 만일 당시 개편 이후 저유가 환경이 유지됐더라면 LNG를 쓰는 국내 기업들이 이익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가스 가격은 최대 22배(정점 가격 기준)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가스 국제 가격과 산업용·가정용 가격 비교.


이런 국제 가격 변동은 산업용 가스 가격에 충실히 반영됐다. 제조업체가 공장 가동을 위해 사용하는 산업용 가스요금은 지난해 9월 메가줄(MJ)당 31원(도매요금 기준)으로 가정용(15.7원)의 1.97배로 뛰었다. 현재 산업용 요금(MJ당 30.84원)은 2020년 11월(9.75원)보다 3배 이상 높다.

가스를 돌려 발포 플라스틱 소재 제품 등을 만드는 김씨의 공장은 이 요금 변동의 여파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외형적으로 김씨의 공장은 지난해 발포 플라스틱 부문에서 15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수출도 늘었지만, 지난해 수지는 오히려 적자로 전환했다. 2020년 14억 원, 2021년 15억 원이던 가스요금이 지난해에 총 25억2,900만 원 청구됐다.

거래처에 납품 단가 인상을 사정사정해 봤지만, 실제 공급 단가는 10~15%밖에 올리지 못했다. 늘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이라 인력 감축이나 임금 동결도 불가능했다. 애써 잡은 고객을 잃을라, 숙련된 직원들을 잃을라, 적자는 오롯이 회사가 떠안았다.

설비를 모두 가스 기반으로 구성한 탓에, 이제 와서 에너지원을 바꾸기도 어렵다. 대기업은 '자가소비용 LNG 직수입 제도'를 이용해 싼 가격에 가스를 직접 수입해 올 수도 있지만, 김씨 같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정부의 요금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정점을 찍은 LNG 가격이 조금만 지나면 내려갈 것 같아 '한 달만 기다리자'는 바람을 품은 지도 벌써 1년째. 국제유가는 이미 꺾였다는데, 매달 말일 통지되는 '다음 달 가스 단가'는 내려갈 기미가 없다.



"공정 효율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봤어요. 하지만 이제는 기술적으로 한계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된다는 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닙니까?"


김씨는 울부짖다시피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까지 김씨의 공장은 가정용의 2배가 넘는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기업하는 사람은 모두 잘살고, 개인들은 모두 서민이라는 것도 편견 아니냐"며 "기업에도 어려운 기업이 있고, 국민 중에도 잘사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표만 바라보는) 포퓰리즘적 가스요금 체계를 이어간다면 한국은 더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손쉽게 가격 동결하는 구조가 문제

김씨 공장의 사연을 접한 전문가들은 용도에 따른 요금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가정용 요금을 제값에 걷지 못해 쌓인 미수금이 9조 원에 달하면서, 그 부담이 앞으로 산업용에까지 더 전가될 수도 있다. 유 교수는 "정부가 너무 쉽게 가격을 동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도시가스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가정용은 동결하고 산업용은 방치하는 방식으로 요금 정책을 운영하다 보니, 양쪽 모두에서 취약점이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유 교수는 "동결 대신 서민층이나 영세 기업 등에 별도의 에너지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금 체계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가스공사는 "가정용 미수금으로 인한 부담이 산업용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공사 내부 규정에 따라 가정용 미수금은 가정용 요금에만 정산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정용 요금이 동결되면서 산업용 요금과 격차가 벌어진 것일 뿐, (일부러) 산업용을 더 비싸게 공급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천안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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