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테크, 망 사용료 내라" 유럽 입법 드라이브...한국 통신업계도 예의 주시하는 까닭은

입력
2023.02.28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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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통 EU 집행위원, MWC 참석 기조연설서
광케이블망 확장 위한 비용 분담 콘텐츠 공급자에 요구
'망사용료법' 입법 중단 한국서도 이목 집중

티에리 브르통 유렵연합(EU) 내부시장 집행위원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티에리 브르통 유렵연합(EU) 내부시장 집행위원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27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3'에서 '망 사용료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펼쳐졌다.

MWC를 앞두고 유럽연합(EU)이 주요 기술기업(빅 테크)을 향해 망 사용의 공정한 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예고하며 불씨를 댕겼다. 망을 제공하는 유럽 통신사들이 이를 환영한 반면 미국 넷플릭스와 메타 등은 반대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EU 집행위 "빅 테크, 인터넷망 품질 개선에 비용으로 기여해야"


망 사용료 둘러싼 콘텐츠 공급자(CP)와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입장. 그래픽=송정근 기자

망 사용료 둘러싼 콘텐츠 공급자(CP)와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입장. 그래픽=송정근 기자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MWC 23의 '열린 미래를 위한 비전' 세션 기조연설에서 빅 테크가 망 사용에 대한 공정한 대가(fair share)를 냄으로써 품질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U 집행위는 23일 '통신산업 대전환을 위한 세 가지 정책 방안'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①EU 회원국인 각국 정부가 제도를 정비하고 ②통신사업자가 투자를 늘려 광케이블망을 확장하도록 하되 ③빅 테크 기업이 그 투자 비용을 일정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이 법안은 입법 절차의 첫 단계인 공공 의견 수렴 중이다.

유럽의 망 이용료 논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인터넷 이용량이 크게 늘고 접속이 종종 끊기면서 불붙었다. 인터넷서비스공급자(ISP)인 유럽 주요 통신사들이 인터넷망 성능 개선에 빅 테크가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인터넷망 확대 필요성을 느낀 EU 집행위가 비용을 나눠 내게 하려고 이 논리를 들고나왔다.

반면 콘텐츠공급자(CP)인 유튜브, 넷플릭스 등 콘텐츠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망 이용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사들이 공급자에게도 이용료를 내게 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이용료 산정 근거도 확실치 않다고 반발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통신 회사와 콘텐츠 플랫폼 사이에 가치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법안"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한국 망사용료법, 여론전 수세로 인해 입법 제동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한국 통신업계가 EU의 정책 도입 여부에 주목하는 것은 국내 망 사용료 논쟁에서 통신사 쪽 입장에 힘을 싣는 근거로 쓰일 수 있어서다.

한국에선 플랫폼 기업이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일단 망 사용료 납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사이의 소송 1심에서는 법원이 SK브로드밴드 손을 들어줬다. 국회에서도 CP의 ISP에 대한 망 사용료 납부를 의무화하는 '망 사용료법'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튜브가 한국 내 투자 규모를 줄일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면서 법안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인터넷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국내 통신사 배만 불리고 이용자가 피해를 보는 법안"이란 여론이 거세졌다. 아마존 계열 실시간 인터넷방송 플랫폼 트위치의 최대 화질 저하와 다시보기 서비스 중단 조치도 망 사용료법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되면서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세계 규제 표준' EU라지만...'빅 테크 본산' 미국의 반응도 변수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위치한 메타 본사 앞 로고. A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위치한 메타 본사 앞 로고. AP 연합뉴스



EU가 망 사용료 입법 논의를 본격화하는 모습은 ISP 측에는 반전의 기회로 여겨진다. 국제 빅 테크 기업의 중요 소비시장이자 다수 국가를 거느리고 '세계 규제 표준'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EU의 정책 방향은 유럽뿐 아니라 다른 나라 규제 당국과 기업의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EU가 2018년 제정한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이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이 한 예다.

다만 EU에서 빅 테크를 향한 비용 분배 요구가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6월 '유럽시민자유연맹'을 비롯한 17개국 34개 비영리단체(NGO)가 반대 입장을 발표했고 규제 당국 중 하나인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도 부정적 의견을 담은 예비보고서를 냈다.

빅 테크의 본산 미국 반응도 변수다. 이렇다 할 플랫폼이 없는 EU가 미국 기업인 대형 IT 기업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신업계의 로비를 받아들여 망 사용료를 화두로 꺼낸 게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한다.

미국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피오나 알렉산더 선임연구원은 "이용자와 콘텐츠 제공자 양측에 돈을 내라 하면 인터넷 국제 표준은 위협받는다"며 "인터넷 연결망 강화를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목표를 확실히 세우고 정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르셀로나=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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