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외침,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영국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외침,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입력
2023.03.07 04:30
14면

<8>중고령층의 연금 공백기 어떻게 메워야 하나
OECD 연금수급시점 줄줄이 미뤄…평균 64.2세
우리나라도 정년 61세이지만 65세 돼야 연금 수령
“고령층에 근로소득 마련” vs. “되레 빈곤율 높아져”
고령층 수요 맞는 재고용제도ㆍ인턴 직종 개발 필요
근로취약계층 위한 연금ㆍ노동정책의 조화 이뤄야

편집자주

주로 수치로 묘사되는 경제학은 추상적인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결국 구현되는 것은 경제 현상이라고 다르지 않겠죠. 경제 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들이 문학과 역사학, 철학에 등장하는 경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문학 속 경제’를 3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다니엘(왼쪽)이 구직센터 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 죽기 전에 항소심 날짜를 요구한다"는 낙서를 하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지나가는 행인이 같이 응원해주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다니엘(왼쪽)이 구직센터 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 죽기 전에 항소심 날짜를 요구한다"는 낙서를 하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지나가는 행인이 같이 응원해주고 있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건강악화로 실업상태가 된 59세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이 관료적이고 복잡한 절차로 인해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국가에 투쟁하는 과정을 담은 영국 영화다. 40년 동안 성실히 목수 일을 해왔던 다니엘은 갑작스러운 심장질환 악화로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생활비가 없어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일을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하였음에도 심사 담당관은 다니엘이 사지를 멀쩡히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 심사에서 탈락시킨다. 그는 부당한 심사 결정에 항소하지만, 기약을 알 수 없는 기다림으로 인해 생활비가 급했던 다니엘은 구직 센터에 방문해 실업 수당을 신청하게 된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인터넷 사용과 매주 구직노력을 구직센터 담당관에게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게으른 노인으로 취급하는 담당관의 태도에 실업 수당을 포기하게 되고 항소심 재판을 요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벌이다 검거되기도 한다. 결국 기다림 끝에 질병수당 심사에 대한 항소 재판이 열리지만, 판결을 기다리는 마지막 순간에 심장마비가 오게 되며 생을 마감한다.

비록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한평생 성실히 일해 온 중장년층이 건강악화로 실업자가 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운 현실을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8년 1차 연금개혁으로 연금수급 개시연령이 2013년도부터 2033년까지 61세에서 65세로 5년에 1세씩 단계적으로 상승하게 되어 정년과 연금수급시점 사이 동안의 괴리가 길어지게 됐다. 이러한 중고령층의 소득공백 발생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연금 공백기에 놓인 우리나라 어느 중년층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령연금과 국민연금 조기 수급 연령 비교. 국민연금법을 토대로 필자가 작성.

우리나라 노령연금과 국민연금 조기 수급 연령 비교. 국민연금법을 토대로 필자가 작성.


그렇다면 왜 국가는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시키는 것일까? 직접적인 이유는 기대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연금급여 지출시점을 늦춰 장기적인 급여지출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로는 늦어지는 연금수급 시점만큼 은퇴를 지연시켜 고령층의 노동참여를 장려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연금 공백기 동안 고령층의 근로소득을 증가시켜 조세수입을 높이고, 국민연금 가입률을 높여 국민연금 수입이 증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세대로 올수록 고령층이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여건이 개선됨에 따라 해외 연금정책은 고령층의 고용참여를 장려해 고령화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일찌감치 재정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해왔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현재 평균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64.2세이며 주요 16개국의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65세보다 높거나, 그 이상으로 상향할 것을 논의 중이다. 특히 덴마크를 포함한 5개국에서는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기대수명에 연동한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기대수명이 길어질 때 자동적으로 연금수급 시점을 높이도록 했다. 이에 따라 덴마크는 현재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74세로 상향했다.


OECD 회원국의 연금수급 개시연령 비교. 자료 OECD

OECD 회원국의 연금수급 개시연령 비교. 자료 OECD


기존 해외 연구들은 연금수급 개시연령 상향이 의도한 대로 고령층의 은퇴를 지연시켜 고용을 장려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작용 또한 발견됐다. 영국에서는 65세에서 66세로 연금수급 연령이 상향된 결과, 65세 시점의 고용이 증가했지만, 근로소득이 연금소득 감소를 충분히 보완하지 못했고 빈곤율이 상승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특히 저학력이고 1인가구이거나 자가가 아닌 월셋집에 거주하는 경우 빈곤율이 더 크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한 호주에서는 건강이 좋고 인적 자본이 높은 계층에서는 근로가 크게 늘어나는 현상이 발견됐지만, 반대의 경우에서는 근로가 늘기보다는 실업급여와 장애연금 수급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이 같은 결과들은 연금수급 개시연령 상향이 건강 및 교육 수준에 따라 고용과 소득효과가 이질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길어지는 연금 공백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연금수급 개시연령 상향에 대한 대응책은 근로능력에 따라 이원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장애나 질병으로 인해 근로를 유연하게 늘리지 못하는 연금수급자의 경우엔 소득을 보완해줄 필요가 있고, 근로가 가능한 경우엔 고령층의 노동시장환경을 개선해 근로활동을 원활하게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근로약자에 대한 소득보완은 어떻게 제공하는 것이 좋을까? 한 가지 방법으로는 장애 때문에 혹은 근로 중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근로가 어려운 경우에는 감액 없이 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정상 노령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앞당겨 주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프랑스 정부에서는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을 추진하고 있지만, 장애 혹은 근로 중 사고나 질병으로 근로가 어려운 경우에는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62세로 유지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장애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문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로가 가능한 고령층에게는 노동시장 환경을 개선해 원활한 근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정년과 연금수급 시점 사이 동안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일본과 같이 재고용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01년도부터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했고, 이에 정년과 연금수급 개시연령 사이의 괴리가 발생했다. 대신 두 연령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2006년도부터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초기엔 사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계속고용을 희망하는 고령자 중 노사합의하에 민간 기업에서 선별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했고, 7년이 지난 2013년도부터 희망하는 고령자 모두를 고용하는 보편적 재고용제도로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일본은 재고용제도 도입에 따른 사업주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재고용된 고령층에 대한 임금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이에 따라 60세 이후 재고용된 고령층의 임금은 60세 때 임금 대비 약 40% 감소했다. 2011년에 일본 노동정책연구ㆍ연수기구에서 재고용된 고령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계속 고용된 후의 임금에 만족하지 않는 고령층의 비율이 60.6%에 달했다. 고령층 고용에 따른 급격한 인건비 상승을 막고 고령층 고용자의 업무의욕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직무와 생산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임금체계로의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은퇴한 노년의 인턴 사원이 자신의 경험과 노련미를 활용해 젊은 회사 직원들과 융화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은퇴한 노년의 인턴 사원이 자신의 경험과 노련미를 활용해 젊은 회사 직원들과 융화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만 60세 이상 고령층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시니어 인턴십에 대한 일자리 질 개선도 필요하다. 일반형 시니어 인턴십은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주가 60대 이상 고령층을 인턴으로 3개월 채용하거나 인턴계약이 끝난 후 6개월 이상 계속고용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지원금을 제공해 고령층 고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시니어 인턴십은 2015년에 개봉한 ‘인턴’이라는 영화에서도 익숙한 제도다. 영화에서는 전화번호부를 만들던 회사의 부사장으로 은퇴한 벤(로버트 드 니로 분)이 은퇴 후 삶의 무료함을 느끼다가 젊은 최고경영자(CEO)인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세운 온라인 패션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는 벤이 자신의 근무 경험과 장점을 활용해 회사에 젊은 직원들과 잘 융화하는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시니어 인턴십은 어떨까? 2016년도에 시니어 인턴 운영기관과 인력파견형 사업 수행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단순노무직으로 알선하는 비율이 높았다. 앞으로 은퇴하는 60대 고령층들은 교육수준과 전문성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고령층의 수요에 맞는 새로운 시니어 인턴십 직종을 개발하고, 이전 근무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직종으로 매칭이 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할 것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니엘이 도왔던 미혼모 케이티가 그의 장례식장에 참석해 그가 항소 재판장에서 읽으려 했던 입장문을 읽는다. 그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길어지는 연금 공백기에 중장년층이 시민으로서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로취약계층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연금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의 연계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김도헌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김도헌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김도헌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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