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듣는 것? 이젠 직접 체험!" 메타버스 뮤직 신기원 열다

"박제된 음악을 해방하라" 메타뮤직으로 CES 최고혁신상 받은 이성욱 버시스 대표

입력
2023.03.08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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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피아노 배워 음대 진학, CF 게임음악 등 수백 곡 작곡
AI 이용해 듣는 음악을 몸으로 체험하는 '메타뮤직 시스템' 개발

음악은 에디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면서 음악은 기록이 됐다. 그 이전에 음악은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체험활동이었다. 유럽 귀족들은 하이든,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와 연주인들을 고용해 생음악을 즐겼고 직접 악기를 배워 음악을 재현했다. 우리 조상들이 논밭에서 굽힌 허리를 펴며 구성지게 뽑던 소리와 징, 꽹과리를 두드리며 흥을 돋우던 사물놀이도 몸으로 부딪치며 가락을 체화한 노동요였다.

그랬던 음악이 축음기 이후 감상용으로 박제됐다. 완성된 것을 들을 수 있지만 음악 속으로 들어가 함께 참여하기 어려워졌다.

신생기업(스타트업) 버시스의 이성욱(52) 대표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그가 2020년 창업한 음악기술(뮤직테크) 업체 버시스는 사람들이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음악 활동에 참여하는 '음악 해방'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메타뮤직 시스템'이라는 혁신적 음악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서비스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통신(IT) 전시회 'CES'에서 20개 기업만 수상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음악 해방을 위한 출사표를 들어 봤다.

이성욱 버시스 대표가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스튜디오 스크린에 '메타뮤직 시스템'을 띄워 놓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이성욱 버시스 대표가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스튜디오 스크린에 '메타뮤직 시스템'을 띄워 놓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1년 만에 피아노 마스터해 음대 진학

원래 이 대표는 경희대 작곡과를 나온 음악인이다. 그런데 그가 음악을 하게 된 과정을 들어 보면 신동 이야기처럼 극적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고교 시절까지 계속 습작을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소설보다 음악이 형식에서 더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고3 때 피아노를 처음 배웠죠."

고3 때 '바이엘'로 시작한 피아노는 1년도 안 돼 베토벤까지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탁월했다. 덕분에 음대에 진학했다. "급하게 피아노를 배워 다른 연주자들처럼 협주곡 악보를 한눈에 빠르게 보지 못해요. 그래서 악보 해석에서 자유로운 컴퓨터 음악을 했죠. 광고, 게임, 영화음악 등 수백 곡을 작곡해 돈을 곧잘 벌었어요."

컴퓨터도 좋아한 그는 컴퓨터 음악을 위해 독학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프로그래밍도 배웠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대학 3학년 때 알케미스트라는 게임회사를 만들었다. "당시 삼성벤처스에서 3억 원을 투자받아 국내 최초의 3차원 다중접속역할분담게임(MMORPG) '알케미스트'를 만들었는데 처참하게 망했어요. 돈 관리가 안 돼 월급 한번 받지 못했죠."

“난 삼성의 용병이었다”

첫 사업 실패 후 그는 경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제대로 경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을 마치고 삼성물산에 취직했어요."

프로그래밍 등 남다른 IT 실력 덕분에 그는 사원이 아닌 종합상사부문의 과장으로 특채됐다. 이 대표만 특별 대우한 것에 불만을 품고 그만둔 입사 동기가 있을 정도로 파격 대우였다.

"삼성에서 신성장 돌파구를 찾는 용병이었죠." 그는 삼성에서 인터넷과 미디어 분야의 신사업을 찾는 일을 했다. "신사업 투자 심사와 미래사업 계획 업무를 맡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빠져드는 성격이어서 2년 동안 3일씩 회사에서 밤을 새우며 열정적으로 일했어요."

해외 기업들은 프로젝트 매니저(PM) 명함을 들고 다닌 그를 성씨 때문에 삼성 집안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PM은 이사급이었어요. 새파란 젊은이가 PM 명함을 내미니 착각했죠. 그 시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터넷과 영화, 음악 회사들을 많이 만났어요."

당시 음악 회사들은 인터넷으로 음악을 판매하고 싶었으나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고심했다. 그는 이를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반 휴대폰 시절이었는데 음악 서비스 비용을 휴대폰 이용료에 합산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와 함께 이동통신 속도가 점점 빨라져 휴대폰으로 음악과 영상을 보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보고서를 올렸어요."

올해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버시스의 '메타뮤직 시스템'. 이용자가 아바타를 움직여 음악에 변화를 주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버시스 제공

올해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버시스의 '메타뮤직 시스템'. 이용자가 아바타를 움직여 음악에 변화를 주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버시스 제공


아스팔트에서 큰절하며 시작한 신사업, 지니 뮤직이 되다

삼성물산은 그의 보고서를 토대로 KBS, KTF(현 KT)와 함께 모바일 콘텐츠 사업을 위한 합자회사 다이렉트미디어를 만들었다. “KBS와 KTF는 사업에 회의적이었어요. 아스팔트에서 큰절까지 하며 두 회사 담당자들을 설득했죠."

그 결과 다이렉트미디어에서 휴대폰으로 TV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축구 한일전을 휴대폰으로 생중계했는데 이용자가 몰려 서버가 터질 정도로 크게 성공했어요."

덕분에 그는 다이렉트미디어로 파견 갔다가 눌러앉았다. "이사로 옮겨서 사장까지 했죠. 8년 재직기간 누적 매출이 1,000억 원이었어요. 당시 CJ미디어 등 대형 미디어 업체 연 매출이 340억 원이니 돈을 잘 번 셈이죠."

그는 다이렉트미디어에 근무하며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도 기획했다. "도시락이라는 음악 서비스였는데 지금 KT의 '지니 뮤직'이 됐죠."

건방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모든 것 버리고 유학

그렇게 승승장구하자 그의 표현대로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예측과 사업 계획이 모두 맞아 성공했으니 자신감이 충만했죠. 그래서 해 보지 않은 것을 하려고 상호 작용하는 쌍방향 인터랙티브 음악 서비스를 시도했는데 잘 안 됐죠.”

마침 교수 제안을 받아 8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 정리를 위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여행을 떠났다. "순례길을 걷는 내내 인터랙티브 음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죠."

그가 말하는 인터랙티브 음악이란 이용자가 끼어들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음악이다. "왜 음악은 게임처럼 듣는 사람이 개입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풀고 싶었어요."

의문을 풀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09년 나이 40세에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원으로 늦깎이 유학을 떠났다. 카네기멜런 대학의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센터는 가정용 비디오게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IT기술로 유명했다. "유학 가서 엄청 고생했어요. 생활 영어만 하다가 학문 영어를 하려니 잘 들리지 않았죠. 2015년까지 힘들게 공부해 AI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AI와 음악을 결합하고 싶었죠." 이를 실험하기 위해 대학원 졸업 후 2015년 모모톤이라는 두 번째 회사를 창업했다. 거기서 내놓은 것이 새로운 발상의 동작인식 헤드폰이다. "사람이 움직이면 음악이 바뀌는 헤드폰이었는데, 중앙처리장치(CPU) 반도체가 5개나 들어가 가격이 1,000달러를 넘었죠. 결국 아이디어와 기술은 좋았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하고 2년 만에 회사를 접었어요."

이성욱 버시스 대표가 감상하는 음악이 아닌 체험하는 음악을 위해 AI와 메타버스를 결합해 만든 메타뮤직 시스템 개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이성욱 버시스 대표가 감상하는 음악이 아닌 체험하는 음악을 위해 AI와 메타버스를 결합해 만든 메타뮤직 시스템 개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길거리 공연 보고 세 번째 창업

이 대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국해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밀기계 회사에서 2년간 임원으로 일했다. 그때 일대 전환점이 될 사람들을 만났다. "2018년 인하대생들이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공연을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했어요. 이 공연을 보다가 못다 한 인터랙티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죠. 그때 만난 조카뻘 정도 되는 인하대생 2명과 2020년 3월 지금의 회사를 세 번째로 창업했어요."

여기서 내놓은 첫 번째 제품이 독립 여성가수 수민의 음악을 담은 앱 수민의 '파이트맨'이다. 사람의 행동을 분석해 음악에 적용하는 AI가 장착된 이 앱은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뜬 공을 건드리면 동작에 따라 음악의 속도, 리듬이 달라진다. 즉 이용자가 손을 움직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최초로 이용자가 제어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음악을 선보였죠. 음악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만든 앱이에요."

수민의 파이트맨은 지난해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아울러 이 대표에게 인터랙티브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유료 앱이었는데 수민 팬들이 많이 샀어요. 여기서 성공 가능성을 봤죠."

곧바로 내놓은 두 번째 제품 '히치하이커의 메타버스 음악 공간'은 최초의 음악 메타버스다. 연예기획사 SM의 유명 작곡가 겸 가수 히치하이커를 캐릭터로 만들어 가상공간(메타버스)에서 춤을 추게 하는 인터랙티브 앱이다. "이용자가 캐릭터를 건드리면 음악이 변하며 춤이 달라져요. 국내외 기획사들 반응이 뜨거웠죠."

메타버스 음악의 신기원을 열다

히치하이커 앱 덕분에 유명한 미국 힙합 기획사 록 네이션과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 SM, 하이브 등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올해 CES 최고혁신상에 빛나는 '메타뮤직 시스템'이다.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를 이용해 만든 메타뮤직 시스템은 클로에라는 아바타를 건드리면 손동작에 따라 배경과 음악, 캐릭터의 움직임이 변한다. "게임처럼 메타버스를 돌아다니며 숨어 있는 음악 아바타를 발견하도록 구성했어요. 한마디로 팬이 스타를 소유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죠. 그러면 자신의 스타 아바타를 위해 아이템을 구입하는 등 기꺼이 돈을 쓰죠. 앱 자체가 팬덤 비즈니스예요."

메타뮤직 시스템은 올여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팬들이 스타 아바타와 AI 챗봇을 이용해 채팅을 할 수 있어요. AI 챗봇에 스타의 성향이 반영돼 마치 스타와 얘기하는 것 같죠."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유명 기획사들과 아바타 개발을 협의 중이다. "록 네이션을 비롯해 국내외 대형 기획사들과 스타들의 메타버스용 아바타 개발을 논의 중입니다. 관심 있는 음악가라면 누구든 환영입니다."

이 대표는 메타뮤직 시스템이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본다. "앞으로 음악 체험이 더 즐거워질 겁니다. 음악사에 전환점이 되도록 메타뮤직을 키워서 듣는 음악을 체험 음악으로 바꾸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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