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정명석, '주인님' 이재록은 어떻게 신도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했나

입력
2023.03.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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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종교적 신념 이용한 일종의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 희박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포스터.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포스터. 넷플릭스 화면 캡처

사이비(似而非) 또는 이단(異端)으로 불리는 교단의 실태를 폭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방영돼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 정명석(78)씨나 만민중앙성결교회(만민중앙교회) 이재록(80) 목사의 낯뜨거운 성범죄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정씨는 2003~2006년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 등지에서 한국인 여신도 4명을 성폭행하거나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고, 대법원은 2009년 4월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그는 1999년부터 수사기관 내사를 받던 중 2001년 해외로 도피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범죄인 인도 청구에 따라 송환됐다.

정씨는 2018년 2월 형기를 마치고 전자발찌를 차고 출소한 직후부터 2021년 9월까지 JMS 본산으로 불리는 충남 금산군 소재 수련원 등에서 홍콩 국적 신도를 강제추행하거나 준강간하고, 2018년 7월부터 5개월 동안 5회에 걸쳐 같은 수련원에서 호주 국적 신도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목사는 만민중앙교회 신도 9명을 40여 차례 성폭행 및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16년형이 확정돼 대구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올해 1월 뇌종양 제거 수술을 위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위독한 상태가 이어져 형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이들이 어떻게 신도들을 대상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도 번졌다. 스스로를 ‘메시아’나 ‘재림 예수’(정씨), ‘주인님’이나 ‘하나님의 아들’(이 목사) 등 종교적으로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존재라고 자처한 것부터가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고립·공동체 생활 등 통해 세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상 캡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상 캡처

범죄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은 정씨나 이 목사 등이 이단의 종교적 신념을 이용한 일종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통해 이런 범행이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통제력이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심리적 지배 또는 심리 지배라고 부르고, 쉽게 ‘세뇌’라는 표현도 쓴다.

특히, 사이비 종교는 그릇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범죄 유형이다. ①취미 등을 빌미로 접근해 친밀한 관계를 맺은 뒤 ②성경 공부를 하자며 자신들의 교리로 이끌어 맹목적인 신앙에 빠져들게 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적 가치를 주입하는 동시에, 이를 따르지 않으면 현실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등 공포를 유발하는 일종의 ‘반대급부’를 받게 된다는 협박을 가하게 된다.

이후 ③가족이나 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서서히 끊게 만든다. 정상적인 사고나 비판적 시각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언론 매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그들만의 세상과는 다른 세계와의 접촉도 차단한다.

이렇게 빠져들면 ④신도들만으로 구성된 특정 지역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유도한다. 경찰 등 치안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⑤피해자들은 결국 절대적인 권능을 지녔다고 믿는 가해자의 금전적·성적 요구를 사실상 아무런 거부감 없이 따르게 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들 사례는 종교를 도구로 사용한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에 빠져들면 피해자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이 단계에선 폭행이나 협박 같은 외형적 물리력 행사 없이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이 보낸 재림예수'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주 정명석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주 정명석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문가들이 짚은 패턴은 정씨나 이 목사에 대한 검찰이 수사한 내용이나 법원 판단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2000년 6월 친구 소개로 JMS에 가입한 뒤 이들의 주요 교리인 ‘30개론’을 배우며 정씨를 ‘메시아’로 믿게 됐다. 30개론은 정씨가 1980년대부터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를 요약·인용해 만든 성경에 대한 재해석론이다. 정씨의 영문 이니셜인 JMS는 정씨가 처음 만든 ‘예수교 대한감리회’의 세칭 ‘Jesus Morning Star’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정씨는 이 단체의 교주 또는 총재, ‘선생님’으로 불리며,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재림예수이고, 사람을 축복하거나 저주할 수 있으며 만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또, “메시아인 정씨의 사랑은 아무나 받지 못하는 선택된 행위” “하나님이 나(정씨)에게 세상의 모든 여자를 허락했다” “예수님이 나의 몸을 통해 기뻐하신다” “나를 거역하면 큰일이 난다”는 취지로 세뇌했다.

A씨는 어학연수를 나가기 전 “영적으로 힘들고 급한 상태인 A씨를 정씨가 부른다”며 “이런 얘기를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어학연수 비용을 써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정씨의 추종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A씨는 다른 여신도들과 함께 면담 도중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A씨는 정씨가 예수님을 대신해 세속을 구원할 종교적 메시아로 정씨를 거부하거나 의심하면 저주받고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또,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낯선 외국에서 정씨의 행위를 거부하면 정씨의 추종자들에게 어떤 위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절대적 존재로서 삼위일체 중 성령' 이재록 목사

상습적으로 신도들을 성폭행하는 등 혐의로 고소된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 조사받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상습적으로 신도들을 성폭행하는 등 혐의로 고소된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 조사받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여섯 살 때부터 만민중앙교회에 다닌 B씨는 심한 복통을 앓았을 때나 고등학생 시절 며칠간 계속된 코피가 약을 먹지 않고도 이 목사의 기도가 녹음된 음성사서함만 듣고 낫는 경험을 통해 이 목사를 절대적 존재로서 삼위일체 중 성령의 위치에 있다고 믿게 됐다.

이 목사는 또, B씨에게 가끔 전화해 특별하게 선택받은 대단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고,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라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놀라고 당황했지만 이 목사와의 성관계가 신앙적으로 유익하고, 이 목사가 자신을 특별히 선택해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기 위한 행위로 받아들였다.

만민중앙교회의 교리는 미혼인 상태에서 성관계를 갖는 것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며 금기시했지만, 이 목사의 행위는 금지된 성관계라 여기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B씨는 이 목사에 대해 신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이 목사와의 성관계를 종교적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행위로 받아들이고, 종교적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이 목사의 행위를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를 단념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당시 B씨는 심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거나 적어도 심리적으로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면서 “이 목사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B씨를 준강간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형법상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허구 깨달아도 내적 갈등 일으켜 현실 무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에 설치된 조형물 '서 있는 눈'. 이 조형물을 제작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신도는 교주 정명석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에 설치된 조형물 '서 있는 눈'. 이 조형물을 제작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신도는 교주 정명석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심리적 지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사이비 또는 이단에 빠져들면 심리적·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고립된 상황에 처해 정상적인 외부 세계와 비교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많은 사이비 종교가 외부에서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그들만의 공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또, 피해자 대부분이 교단에서 교리를 강요받는 하위층에 속해 있기 때문에 상급 신도들, 나아가 교주의 지시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따르지 않을 경우 저주를 받거나 구원받지 못한다고 이미 정신적으로 각인된 상태인 까닭이다.

설령, 충격적인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실체를 알게 된다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이미 그릇된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사회적 관계를 모두 끊고 교단 내 관계에서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허구적인 상황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고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적 갈등을 줄이고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에 따라 현실을 무시한 채 행동하게 된다”면서 “환상을 부수고 나오는 것 자체가 많은 희생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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