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탕전실'이 뭐길래…국토부 보험진료수가 조사에 유탄 튄 한의약계

입력
2023.03.16 09:00
구독

국토부, 첩약 일괄 사전 주문 의료기관 적발
한약사회 "15년 방치한 문제, 이제 정리하자"
복지부 "사전 조제 기준 정하기 어려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관계기관 합동검사에서 의료기관 4곳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 거짓청구 등 불법 의심 사례를 확인, 관련 법령에 따라 형사 고발 및 과태료를 부과한다.

국토교통부

지난 2일 국토교통부가 자동차보험진료수가 합동검사 결과를 발표하자 대한한약사회는 즉각 성명 준비에 들어갔다. 이튿날 내놓은 성명의 부제목은 '보건복지부가 외면한 원외탕전실 문제, 국토부가 나서서 정리하나'였다.

국토부와 무관해 보이는 한약사들이 국토부 발표 자료 중 주목한 지점은 '한방 첩약 일괄 사전 제조 2곳'. 교통사고 환자들의 증상 및 질병에 대한 개별 처방전이 없는 상태에서 한방 제품을 900포 이상 대량으로 사전에 주문한 것을 국토부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이같이 사전 주문한 한방 제품을 제조한 곳은 한약사들이 그동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원외탕전실이다.

국토부가 집어낸 원외탕전실 대량 사전 제조

원외탕전실에서 한약을 대량 제조 후 환자들에게 제공한 사례. 국토교통부

원외탕전실에서 한약을 대량 제조 후 환자들에게 제공한 사례. 국토교통부

16일 보건복지부와 한의약계 등에 따르면 원외탕전실은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탕약, 환약, 고제 등의 한약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의료기관 부속시설이다. 의료기관이 설치해야 하고, 공동 이용도 가능해 다수의 의료기관들이 주문한 한약을 만들어 납품한다. 한의사가 직접 진찰한 환자의 한약은 원외탕전실에서 택배로 환자에게 보낼 수도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한의원 내 조제실에서 한약을 조제·탕전했지만 환경, 비용적 측면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이 생기자 2008년 9월 개정된 의료법 시행규칙에 원외탕전실이 처음 반영됐다.

복지부는 이듬해 '원외탕전실 설치·이용 및 탕전실 공동 이용에 관한 지침'을 고시, 시설 규격 및 한의사 또는 한약사 배치 등의 규정을 구체화했다. 현재 전국에는 100개에 육박하는 크고 작은 원외탕전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기와 서울에 가장 많다고 한다.

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째인데 한약사회는 끊임없이 "사전 조제라는 이름으로 불특정 다수를 위한 한약 및 한약 제제를 대량으로 만들어 두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약사법 위반 소지가 있고 한약사 배치는 요식행위라는 주장이다.

원외탕전실이 직접적으로 의료법이나 약사법 위반으로 적발된 것은 아니지만 국토부가 대량 사전 주문을 위법으로 보고 형사 고발에 나서니 재차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국토부 합동점검에서는 원외탕전실에서 제조한 한약의 원가가 약 500원인데, 의료기관에서는 탕전료 포함 1첩당 7,360원의 약제비가 청구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한 쟁점, 사전 조제의 범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법적으로 사전에 한약을 조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원외탕전실에서는 예비 조제와 조제지시서에 따른 제조가 허용되지만 한약사회는 범위 제한이 없다는 점을 꼬집는다. 사전 조제의 기준을 알 수 없어 원외탕전실에서 근무하는 한약사들조차 해당 한약이 누구를 위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약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복지부의 '원외탕전실 인증제'가 의무사항이 아니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원외탕전실 가운데 인증을 받은 비율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채윤 대한한약사회 회장은 "사전 조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원외탕전실 공동 이용 가능 지역을 시·군·구 내로 한정하는 등 복지부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사전 조제 범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한약 몇 첩을 사전 조제로 해야 할지 물리적인 기준 설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도 여러 정황을 따져 대규모 유통을 목적으로 제조하면 약사법 위반, 한의사가 어느 정도 만들어 놓는 것은 사전 조제"라며 "국토부 조사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지켜보겠다"고 설명했다.

김창훈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