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 공포, 끝난 게 아니다... 부실 은행 또 나오면 '2차 패닉'

입력
2023.03.14 19:15
수정
2023.03.14 22:41

뉴욕 증시 블랙먼데이 피했지만 불안 여전
아시아 증시, 세계 금융주 폭락 등 여진
미국 은행 추가 폐쇄 여부가 사태 가를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 미국 금융 시스템은 안전하다는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 미국 금융 시스템은 안전하다는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미국 정부의 긴급 구제책에 뉴욕 증시는 '블랙 먼데이(월요일 증시 폭락)'를 피했지만, 아시아 등 각국 증시는 향후 파장을 우려하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10일(현지시간) SVB 파산 이후 사흘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전 세계 금융주 시가총액 600조 원 이상이 사라졌다. 안전 자산 선호 현상에 미국 채권에 돈이 몰리면서 미 국채 금리가 급락하는 등 시장 변동성도 확대됐다.

사태 추이를 가를 관건은 재정난을 겪는 미국 은행이 추가로 나올지 여부다. 이달 22일 기준금리 발표를 앞두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급한 불 껐지만, 불안한 세계 금융시장

SVB 파산 사태 후 13일 첫 거래를 시작한 뉴욕 증시에는 우려했던 블랙 먼데이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개장 직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예금자 보호를 약속하고 미국 은행 시스템의 안전성을 강조한 것이 투자자들의 불안을 달랜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 증시 대표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83포인트(0.15%) 내린 3,855.76에 거래를 마쳤으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9.96포인트(0.45%) 오른 1만1,188.84로 장을 마쳤다.

다만 은행산업에 대한 불안 심리가 가시지 않으면서 은행주들은 일제히 급락했다. 위기설에 휘말린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61.8% 폭락했고 웨스턴얼라이언스뱅코프(-49.3%), 팩웨스트뱅코프(-45.3%), 자이언뱅코퍼레이션(-25.7%) 등 지역 중소은행들도 폭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증시를 떠난 투자자들의 돈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쏠리며 채권 가격을 밀어 올렸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찬밥 신세였던 미 국채가 투자 도피처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채권 금리는 크게 떨어졌다. 통상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이날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약 0.16%포인트 떨어져 3.5%대에 안착했다. 특히 2년물 미 국채 금리는 약 0.6%포인트 급락한 4.01%대로 1987년 블랙 먼데이 다음 날인 10월 20일 이후 최대 하락세를 보였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미 채권 수요가 급증했다는 뜻이다.

시장에 남아 있던 불안감은 시차를 두고 14일 개장한 아시아 증시로 번졌다. 일본 닛케이 지수가 2.19% 급락한 가운데, 한국 코스피 지수 역시 2.56%대 하락했다. 대만 가권과 중국 항셍지수도 각각 1.29%와 2.19%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이틀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 금융 주가지수와 MSCI 신흥국 금융 주가지수에 포함된 주식의 시가총액 4,650억 달러(약 608조 원)가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위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한 영향이다. 14일 개장하는 미국 증시가 이런 불안 심리를 반영해 뒤늦게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8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8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실 은행 더 나올지가 변수...연준 통화정책 고민

사태가 일단락될지 여부는 재정난을 겪는 미국 은행이 추가로 나올지에 달렸다. 미국 정부의 긴급 구제책으로 급박한 고비는 일단 넘겼지만, 추가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미국 은행이 또 나온다면 불안감은 일파만파로 확산할 수 있다.

불안심리가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을 촉발해 별문제가 없는 은행도 재정난에 빠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상화폐에 투자해 덩치를 불렸다 최근 무너진 미국 시그니처은행에서도 SVB 폐쇄 후 하루 10조 원이 넘는 뱅크런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은행의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시장은 안심하지 않은 것 같다"며 "주식시장에서 중소형 은행주가 폭락한 것이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연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준은 지난달 약 1년 만에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긴축 속도조절에 나섰으나, 최근 경제지표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나타나자 빅스텝(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SVB 파산사태로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섣불리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이달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노무라는 연준이 이달 기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준이 몸을 사리면 인플레이션 억제가 문제다. 연준이 긴축을 중단했는데 물가가 더 오른다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지금보다 더 클 수 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목표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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