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오뚜기 주식 증여받은 미술관·교회에 과세 기준 다른 이유는

입력
2023.03.20 11:50
수정
2023.03.2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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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증여자 의도 반영된 선후관계 따져 과세해야"

대법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법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복수의 공익법인이 같은 날 같은 주식을 기증받았더라도, 선후관계를 따져 과세 기준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과세 순서를 고려한 증여자 의도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밀알미술관에 대한 추가과세가 적법하다고 본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남서울은혜교회에 대한 과세는 원심과 같이 타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오뚜기 창업주인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은 2015년 11월 17일 남서울은혜교회에 오뚜기 주식 1만7,000주(지분율 0.49%)를, 밀알미술관에 3,000주(0.09%)를 출연했다. 옛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은 증여세 과세 가액에 산입하지 않지만, 내국 법인 주식이나 출자 지분을 받았다면 발행 주식 총수의 5%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함 명예회장은 1996년 이미 오뚜기 재단에 17만 주(4.94%)를 증여한 상태였기에 이를 단순합산하면 면제 기준인 5%를 넘어서게 됐다.

국세청은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교회 등이 증여세 자진신고 지분비율을 잘못 책정했다며 교회엔 73억여 원, 미술관엔 13억여 원의 증여세를 추가 부과했다. 교회와 미술관은 이에 "함 명예회장이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 목적으로 기부한 주식이기 때문에 과세할 이유가 없다"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증여세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했지만, 2심은 "단순 합산 방식이 타당하다"며 세무당국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남서울은혜교회에 대한 과세는 옳다고 봤지만, 가장 먼저 주식을 증여받은 밀알미술관에 대한 추가 과세는 취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공익법인이 같은 날, 같은 주식을 출연받았더라도 시간적 선후관계가 있다면 모든 법인이 동시에 주식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함 명예회장이 증여 전에 단체들과 합의해 미술관, 교회, 복지재단 순으로 주식을 출연했다"는 미술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출연자가 증여세 과세 불산입 한도 등을 고려해 주식을 순차로 출연했음에도 같은 날 출연이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각 주식이 동시에 출연된 것으로 봐야 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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