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이건희처럼...재계, 엑스포 유치 위해 지구 64바퀴 반 돌다

입력
2023.04.03 12:00
수정
2023.04.03 15:01
2면

윤석열 정부, 엑스포 유치 국가적 어젠다로 결정
기업들 '원팀' 돼 유치 지원 나서
11월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투표로 유치 확정
소속 171개국 표심 잡기에 주력

이재용(왼쪽)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9월 멕시코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왼쪽)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9월 멕시코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부산에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 지구 64바퀴 반을 돌았다."


한국 기업인들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국제박람회기구(BIE) 171개 회원국 표심 잡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기업인들이 회원국을 만나기 위해 직접 뛴 거리만 258만6,137㎞다. 지구를 64바퀴 반을 돈 셈이다. 명절 연휴를 반납한 채 비행기를 타고 대통령을 대신해 해당국과 경제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모두 유치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기업들이 부산엑스포 유치에 본격 나선 것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부터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국가적 어젠다로 결정하며 재계에 구원 요청을 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홍보에 나서 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엑스포 유치지원 민간위원회가 지난해 5월 출범됐고, 기업들은 원팀이 돼 유치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업마다 담당할 BIE 회원국 지정, '핀셋' 홍보 나서


국내 기업인, 부산엑스포 유치 위한 교섭현황

국내 기업인, 부산엑스포 유치 위한 교섭현황


민간위는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국내 10대 그룹과 BIE 회원국 사이의 관계 등을 감안해 '앵커기업'(담당 회원국)을 지정하며 핀셋 홍보에 들어갔다. 회원국이 11월 최종 투표로 개최국을 뽑기에 회원국을 나눠 밀착 접촉에 나선 것이다. 삼성이 가장 많은 31개 나라를 맡았고, SK(24곳), 현대차(21곳), LG(10곳), 포스코(7곳), 롯데·한화(각 3곳), HD현대·신세계(각 2곳) 등 순으로 맡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 정부보다 각종 사업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기업들이 유치를 호소하기 부담 없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인들은 계획대로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이달까지 방문해 협조 요청한 회원국만 84개국에 이른다. 국내를 찾은 국빈을 접촉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나라 수는 130개로 늘어난다.



그룹 총수들도 세계 곳곳 누비며 지지 호소

5대 기업 총수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5대 기업 총수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바쁜 총수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일찌감치 40여 명 규모로 엑스포 유치 태스크포스를 꾸린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윤석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멕시코와 파나마 대통령을 접견했다. 이 회장은 "부산엑스포는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비전과 혁신 기술을 제시하는 장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요청했다. 이 회장은 앞선 같은 해 6월에도 네덜란드를 찾아 마르크 뤼터 총리에게 "2030 엑스포는 한국과 네덜란드가 함께 이끄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엑스포 민간위원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달 윤 대통령의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 메시지가 담긴 친서를 들고 유럽을 찾아,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등 3개국 총리를 만나 "부산엑스포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며 유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엑스포 유치에 대한 한국의 노력과 부산이 가진 역량을 잘 알고 있다"며 화답하기도 했다.


지난해 체코와 슬로바키아 총리를 만나 유치를 호소했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에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주미한국대사관 주관 행사장을 찾아 아프리카 12개국 대사를 접촉했다. 정 회장은 "세계는 복합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를 주제로 준비 중인 부산엑스포가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지지 요청을 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배터리 공장 방문길에 올라,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를 예방했다. 구 회장은 "부산은 한국 제2도시이자 LG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의미 있는 곳이며 한국 국민들이 엑스포 유치에 열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유치 의사를 전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8, 9월 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 판 반 마이 호찌민시 인민위원장 등을 만났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롯데의 베트남 사업 전반을 논의하면서도 개최지 부산의 힘을 알리는 등 유치 지원 활동을 벌였다.

재계는 전통적으로 국가적 행사 유치에 앞장서 왔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주도로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이뤄졌고, 2002년 한일월드컵은 HD현대 대주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에게 파트너십을 제안해 성사됐다. 2012년 여수엑스포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각각 유치를 위해 뛰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은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벌이는 것처럼 국가적 큰 행사 유치에도 국익을 높인다는 생각으로 앞장서 왔다"며 "이번 부산엑스포 유치도 과거 기적을 만든 유치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총수들까지 나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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