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감산 없다던 삼성전자가 돌아선 까닭은

입력
2023.04.07 16:00
수정
2023.04.07 18:5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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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14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최저치
점유율 확대 노린 '인위적 감산 없다' 입장 바뀌어
감산 결정, 반도체 시장 저점 앞당길 듯

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이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6,000억 원을 기록한 1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이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6,000억 원을 기록한 1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반도체 시장이 차갑게 얼어버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1∼3월) 영업이익이 14년 만에 가장 낮은 6,000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반도체 시장의 호황 덕에 쌓은 호실적이 불황으로 고스란히 사라졌다. 특히 그동안 '인위적 감산은 없다'며 다른 회사들과 차별화를 강조했던 삼성전자도 결국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겠다며 돌아섰다.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줄인다고 공식화 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 반도체 가격 하락세를 붙잡기 위해 감산 계획을 알린 뒤 25년 만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손실 4조 원대 추산"

삼성전자 분기별 실적 추이. 그래픽=강준구 기자

삼성전자 분기별 실적 추이. 그래픽=강준구 기자


7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1분기 잠정 실적에 나타난 실적 하락의 주원인은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70%를 차지하며 핵심 역할을 했던 반도체 시장의 부진이다. 잠정 실적에는 부문별 실적이 들어 있지 않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영업손실을 4조 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비교 대상인 지난해 1분기에는 서버용 메모리 수요에 적극 대응하면서 매출 26조8,700억 원, 영업이익 8조4,500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에 올해 1분기의 골은 더 깊어 보인다.

2분기에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분기에도 D램 가격은 10∼15%, 낸드플래시는 5∼10%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초 반도체 업계는 올해 상반기부터 클라우드 업체들이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도입하기 위해 서버 교체에 나서면 서버용 메모리 출하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세계 경기 침체 등으로 서버 교체가 늦어지면서 기대만큼 수요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상승기 대비 물량 충분히 확보했다"는 삼성

삼성전자가 7일 잠정실적 발표와 동시에 배포한 설명자료. 메모리 반도체 특정 제품에 대한 감산에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가 7일 잠정실적 발표와 동시에 배포한 설명자료. 메모리 반도체 특정 제품에 대한 감산에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 공개와 동시에 배포한 설명자료로 감산을 공식화했다.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 상황 속에서도 여러 차례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메시지를 내왔던 터라 이번 결정은 더욱 눈길을 끈다.

업계에선 그동안 삼성전자가 감산과 거리를 둔 것에 대해 이번 하강기를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자금력을 바탕으로 손실을 감수하며 '버티기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과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삼성이 감산과 투자 축소를 택하지 않으면서 경쟁사도 반도체 가격 하락의 부담에 시달렸다. 마이크론은 실제 지난달 28일 추가 감산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설명자료를 통해 "난이도 높은 선단공정 및 DDR5(5세대 메모리) 전환 등에 따른 생산 제약에 대비해 안정적 공급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면서"특정 메모리 제품은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으로 예상되는 수요 상승기에 공정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으므로, 그동안 이를 보충할 범용 제품을 미리 생산했고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기 때문에 감산으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반면 삼성이 수익성을 개선하고 반도체 시장의 바닥 지점이 오는 것을 더 늦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하나증권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상반기 고객사 재고 수준이 여전히 낮지 않고 서버 수요 강도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재고 감소 가능성이 낮다"면서 "반도체 기업들이 추가적으로 생산 능력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했다.



삼성의 감산, 메모리 가격 회복으로 이어지나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를 위한 클린룸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를 위한 클린룸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감산 결정으로 반도체 시장이 2분기에 저점을 맞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전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하반기부터 고객사의 재고 건전화와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공급 축소 효과가 반영되며 점진적으로 수급이 개선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올해 정보기술(IT)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이 일어나면 반도체 업계가 기다려 온 서버용 수요를 중심으로 메모리 가격이 크게 뛰어오를 여지도 있다. 삼성전자도 이를 염두에 둔 듯 이날 "단기 생산 계획은 하향 조정했으나 중장기적으로 탄탄한 수요가 전망된다"면서 "인프라와 연구개발(R&D) 투자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시도 삼성전자의 감산 공식화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4.33% 오른 6만5,000원에 장을 마쳤다. SK하이닉스도 삼성의 감산 결정으로 숨통이 트였다는 전망 속에 주가가 6.32% 올라 8만9,100원으로 마감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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