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이라는 이름의 알뜰폰 판매

입력
2023.04.14 16: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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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리브엠 제공

리브엠 제공


알뜰폰 업계가 시끄럽다. 금융위원회가 ‘임시 허가’를 내줬던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 ‘리브모바일(리브엠)’을 지난 12일 정식 부가 서비스로 승인을 해주면서다. 국민은행이 부수 업무로 신고하면 당국이 규제 법령을 정비해줄 예정이다. 은행이 공식 알뜰폰 사업자가 된 것인데, 국내 시중은행이 금융업 밖으로 진출하는 첫 사례다. 물꼬가 트였으니 다른 은행들도 저울질을 할 것이다.

□리브엠 서비스는 4년 전 시작됐다. 2019년 금융당국은 금융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영업에서 벗어나 혁신을 해야 한다며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을 받았다. 그해 4월 리브엠은 1호 사업으로 선정됐고, 최장 4년(2년+2년)의 사업 기한이 부여됐다. 이 기간 서비스가 안착하고 금융과 통신을 결합한 혁신금융임을 입증해야 규제를 풀어 정식 인가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금융위가 그 혁신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논란도 많았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은행의 자금력을 앞세운 불공정 경쟁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리브엠은 지금까지 42만 명가량 고객을 확보했다. 통신업계에 메기가 절실했던 정부로선 적극 환영할 일이지만, 10만 명 모으기도 버거운 중소 업계엔 침입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은행 노조도 초기엔 직원들을 휴대폰 판매 직원으로 내몰고 실적 압박을 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진짜 따져볼 문제는 과연 은행의 알뜰폰 판매를 혁신금융으로 볼 수 있느냐다. 은행권에서 또 다른 혁신금융서비스로 정식 인가를 노리는 게 신한은행의 배달 대행 플랫폼 ‘땡겨요’다. 통신, 배달 같은 서비스 업종 진출이 금융의 혁신으로 줄줄이 인정받는 셈이다. 금융과 비금융의 데이터가 결합하면 소비자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건데, 대형 플랫폼을 무기로 한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 혹은 골목상권 진출과 어떻게 다른지 애매하다. 은행과 산업에 쳐놓은 칸막이(은산분리)가 혁신금융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둘 제거되는 게 적절한지도 잘 짚어볼 일이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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