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몰래 휴대폰 개통? 어림없죠"... 장애인 피해 막는 '베테랑' 장애인 직원

입력
2023.04.20 14:00
수정
2023.04.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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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43회 장애인의 날]
'위드유' 9년차 직장인 황범준씨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이 장애인
황씨도 신장장애인, 주 3회 투석
"취약계층 위해 계속 연구할 것"

신장장애인 황범준씨가 18일 경기 안양에 있는 '위드유’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신장장애인 황범준씨가 18일 경기 안양에 있는 '위드유’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제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휴대폰이 개통됐어요.”

황범준(35)씨의 하루는 고객이 남긴 한 줄짜리 민원 파악에서 시작된다. 그는 대기업 계열 통신사 자회사 ‘위드유’의 ‘이상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다. 이동전화에 가입할 때 생기는 여러 곤란한 사정을 조사한다. 개통 회선을 파악하고, 때론 가입 서류에 남은 서명 필체도 들여다봐야 한다. “고객이 몰랐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하기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업무다.

황씨는 특히 장애인 고객이 개통 과정에서 피해를 봤을 때 더 세심하게 신경 쓴다. 그도 1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중증 신장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원인 모를 통증에 응급실로 실려가 만성 신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학창시절에도 수시로 조퇴하고 투석받는 생활을 반복했다. 다행히 고교 1학년 때 신장을 기증받아 남은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18일 경기 안양시 위드유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장애인 피해 핫라인’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며 “나도 장애인이라 이들의 피해 예방에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실 대단한 소명의식에서 위드유와 연을 맺은 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2014년 우연한 계기로 입사했는데, 일을 하면서 의미를 찾았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최소 10인, 상시 근로자 30% 이상이 장애인)’인 위드유에서 그는 9년간 줄곧 이상관리팀에서만 일했다.

18일 경기 안양에 있는 '위드유’ 사무실에서 신장장애인 황범준씨가 모니터를 보며 이동전화 가입 시 발생하는 이상 징후를 살펴보고 있다. 하상윤 기자

18일 경기 안양에 있는 '위드유’ 사무실에서 신장장애인 황범준씨가 모니터를 보며 이동전화 가입 시 발생하는 이상 징후를 살펴보고 있다. 하상윤 기자

장애인 고객이 연루된 명의도용 문제를 해결해 피해를 막은 적도 여러 차례다. 3년 전 지적장애를 가진 일가족 앞으로 휴대폰 10여 대가 개통됐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황씨는 “가입 서류를 보니 서명을 대신한 흔적이 있고, 단말기도 수차례 바꾸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정 매장이 실적을 올리려 장애인 명의로 휴대폰 여러 대를 가개통했다는 의심이 들었다. 결국 그가 찾아낸 단서로 피해를 구제할 수 있었다.

황씨를 포함해 위드유에는 135명(중증 99명, 경증 36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전체 직원(232명)의 절반이 넘는다. 그는 “우리 회사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 같은 동료일 뿐”이라며 “차별이 설 자리가 없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처음엔 장애인의 업무 습득 속도가 느릴 수 있지만 적응 기간을 주면 문제 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궁극적 목표도 장애인 꼬리표를 뗀 지금 업무에서 ‘누구보다 잘하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기증받은 신장 기능이 떨어져 3년 전부터는 퇴근 후에도 투석을 받지만 일 욕심은 여전하다. “장애인을 포함해 정보취약계층의 피해를 막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겠습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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