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로봇들①]아이스크림 만들고, 쌀국수 끓이고…"맡은 일 묵묵히 해내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입력
2023.04.29 04:30
수정
2023.04.29 08:0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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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빕스·서울 덕성여대
업무에 로봇 도입한 현장 가보니
단순하지만 힘들거나 위험한 업무 대신 수행
대당 1000만~3000만 원 수준, 인건비 절감도
로봇 움직임 만으로 홍보 효과도 발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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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 수십 명이 미소를 띠며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보통 인기 놀이기구나 판다·래서판다가 머무는 판다월드 앞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감안하면 낯선 모습이었다.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세 대의 로봇이었다.

물건을 집는 팔과 지지대로 이뤄진 이 로봇은 쌓여 있는 빈 컵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받침판에 올린 뒤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는 캡슐을 가져왔다. 이어 컵 위에서 캡슐을 쭉 눌러줬다. 한쪽으로만 나오면 넘칠 수 있으니 시계 모양으로 적당히 계속 흔들었다. 다 짜낸 빈 통은 버리고 다 만든 아이스크림은 손님의 두 손으로 향했다. 이 모든 작업은 15초 만에 끝.

이곳은 서비스테크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로봇카페 '라운지엑스'. 점장인 정동희씨는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곧장 "정해진 일을 쉬지 않고 한다"고 답했다. 그는 "성수기 기준 하루 300개씩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며 "로봇이 전체 카페 매출의 30~40%를 책임진다"고 말했다.

특히 단순 작업을 로봇이 맡다보니 업무 효율이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정씨는 "다른 카페라면 최소 네 명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로봇 세 대와 관리자 한 명으로 충분하다"며 "관리자는 종종 아이스크림 컵이 떨어지는 것만 채워주거나 주변 정리정돈만 하면 된다"고 소개했다.



①에버랜드 찾은 아이들 눈길 사로잡는 아이스크림 로봇

에버랜드 라운지엑스 카페에 설치된 아이스크림 제조 로봇. 안하늘 기자

에버랜드 라운지엑스 카페에 설치된 아이스크림 제조 로봇. 안하늘 기자


올해 최저 임금 9,62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201만580원. 인건비는 오르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게 자영업·소상공인들의 고민이다. 특히 단순 작업이나 몸이 고된 3D 업종에선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로봇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산업 현장은 물론 일상생활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모델이나 쓰임새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바리스타 1명 연봉보다는 판매가가 낮다고 라운지엑스 측은 설명했다. 최근 두산로보틱스가 내놓은 식음료 사업장 전용 로봇(E0509)은 순수 기기만 1,000만 원대에 팔린다.

로봇을 도입하면서 뜻밖의 효과도 얻었다고 한다. 로봇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훌륭한 홍보 모델이 됐다는 것이다. 정씨는 "처음엔 로봇을 매장 안에 뒀는데 동선이 불편해 밖으로 뺐더니 매출이 두 배 이상 뛰었다"며 "로봇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어린이부터 관련 사업을 한다는 외국인까지 와서 꼬치꼬치 묻는다"고 전했다. 이 로봇은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지 않을 때는 춤을 출 수 있게 설정돼 있다.



②빕스 매장에 배치된 '누들 셰프봇'

빕스 등촌점에서 쌀국수를 만들고 있는 '누들 셰프봇'. 송주용 기자

빕스 등촌점에서 쌀국수를 만들고 있는 '누들 셰프봇'. 송주용 기자


팔로 된 로봇은 사람의 팔처럼 동작 입력값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다. 서울 강서구 패밀리레스토랑 빕스(VIPS) 등촌점에는 '누들 셰프봇'이 활약 중이다. 25일 찾은 매장에서는 로봇이 바삐 움직이며 쌀국수와 가락국수를 척척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아닌 로봇이 재료를 데치고 육수를 부어주는 낯선 모습에 매장 고객들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이 조리 로봇은 덴마크 로봇회사 유니버설로봇이 제작하고 LG전자가 판매하는 협동로봇이다. 그동안 국수를 만들려면 사람이 직접 면을 삶고 재료를 올려서 육수를 부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고객이 재료를 담아 온 그릇을 쌀국수, 가락국수 표시에 맞춰 올려놓으면 누들 셰프봇이 재료를 끓는 물에 담가 데친다. 재료가 충분히 익자 로봇팔이 물에서 건져낸 뒤 물기를 탕탕 털어내 다시 그릇에 담았다. 쌀국수, 가락국수 등 면 종류에 맞는 육수를 부어주면 음식이 완성되는데 이 모든 과정에 약 1분 30초가 걸렸다. 직원은 파, 재료가 떨어지면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

이 로봇은 최대 20㎏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고 팔 길이 기준 175㎝ 범위에서 작업이 가능하다. 재밌는 점은 고객이 만들어진 요리를 5분 이내에 찾아가지 않자 셰프봇이 자동으로 음식을 폐기처분하는 모습이었다. '음식의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매장에서 셰프 누들봇이 만들어내는 쌀국수와 가락국수는 평일 350~400인 분, 주말 800~1,000명 분에 나간다. 매장을 책임지는 김현성 점장은 "2019년 12월 로봇을 들여왔는데 직원의 피로도나 부상 위험이 크게 줄었다"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해 홍보 효과도 있었고 음식 퀄리티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니버설로봇 관계자는 "협동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기보다는 인간과 함께 일하면서 근무자와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며 "식당 외에도 물류 포장, 용접 작업 등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고 전했다.



③덕성여대 캠퍼스 누비는 순찰로봇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캠퍼스에서 SKT 자율형 순찰로봇이 순찰을 돌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캠퍼스에서 SKT 자율형 순찰로봇이 순찰을 돌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에는 밤 12시, 새벽 3시, 새벽 5시 하루 세 차례 순찰 로봇이 캠퍼스를 돌아다닌다. 로봇에 달린 저조도 카메라는 어두운 곳에서도 외부인 출입을 확인하고 본부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낸다. 시속 6, 7km 속도로 한 바퀴 도는 데 15분이 걸린다.

덕성여대에서 만난 조영철 SK쉴더스 팀장은 "해 지고 나서는 방범 요원이 두 명만 일하는데 한 명은 중앙 관제실, 나머지 한 명은 정문에서 대기하다 보니 현장에 출동할 상황이 생기면 자리를 비워야 해 불안했다"며 "지금은 애매할 때 순찰로봇이 대신 가서 확인해 줘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덕성여대의 보안을 책임지는 조 팀장은 여대인 만큼 보안에 신경을 더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공간을 폐쇄회로(CC)TV로 관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SK쉴더스와 SK텔레콤은 자율주행 배달로봇 스타트업인 뉴빌리티와 함께 기존의 배달로봇을 순찰로봇으로 개조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영상인식 및 전송기술을 뉴빌리티의 자율주행 로봇 기술에 적용하고 SK쉴더스가 현장에서 활용하면서 개선점을 찾아가는 식이다.

학교 측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SK쉴더스가 교직원과 학생 21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0.2%가 순찰로봇 도입을 만족스러워한다고 답했다.

보안 업계의 경우 24시간 2교대 격일제로 운영되는 만큼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로봇과 함께 일하는 형태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SK쉴더스 측은 설명했다. 해당 로봇의 가격은 2,000만 원대 중반 수준이다.

박혜윤 Sk텔레콤 AI로보틱스 사업개발팀 매니저는 "덕성여대보다 규모가 큰 대학에서도 로봇을 도입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며 "AI 기능을 접목해 쓰러진 사람을 발견해 알람을 울리고 센서를 붙여 화재를 감시하거나 야간에 특정 장소까지 에스코트하는 기능을 넣는 식으로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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