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이면 환자 집으로 왕진 가야죠”···가정 진료 시대는 올 수 있을까

“동네의원이면 환자 집으로 왕진 가야죠”···가정 진료 시대는 올 수 있을까

입력
2023.07.19 15:00
24면
구독

[추혜인 서울 살림의원 원장 인터뷰]
2012년 개원 후 방문진료 앞장서
1차 의료가 할 수 있는 지평 넓혀
장애인·여성·성소수자 친화 의원
5월 전국 방문진료의원 189곳뿐···

2012년부터 서울 은평구에 의료협동조합 살림의원을 꾸린 추혜인 원장. 방문진료를 할 때 조합원이 차를 태워주거나 동행해서 발달장애인 환자 협조를 위해 붙잡아 주기도 했다. 추 원장 한 명이었던 의원엔 이제 소속 의사가 11명이다. 최주연 기자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라면 병원 한번 가는 게 전쟁이다. 집에 누워 질환을 키우면서도 약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하는 현실.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이다.

2012년 서울 은평구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살림의원)을 설립하고 방문진료(왕진)를 시작한 추혜인(45) 살림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의료인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탄생한 것이 병원이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추 원장은 “1차 의료(의원급) 의사들은 방문진료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가정의학과·내과·소아과 의원은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환자분의 일생을 보면 어떤 순간, 병원에 못 오시게 될 때가 있잖아요. 진료실에서 보던 분이 갑자기 안 좋아질 때 잘 아는 의사가 방문을 나가는, 그런 모델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살림의원 의사들은 서울 은평구에서 왕진을 다니며 마을 ‘주치의’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살림의원을 찾아 추 원장을 만났다.

방문진료는 어느 곳이나 필요하다

첫 방문진료는 의대생 시절 철거촌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인천 평화의료협동조합으로 실습을 갔는데,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실습생들을 데리고 철거민들이 모여 있는 ‘골리앗’(망루)으로 방문진료를 가셨어요. 철거용역들이랑 대치 상황이니까 병원에 못 오셔서 고혈압·당뇨 관리가 안 되었던 거죠.”

그때 ‘아, 방문진료는 모든 곳에 필요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의료협동조합을 준비하면서 정식 진료는 아니지만 부탁을 받고 요양원에 왕진을 간 적도 있다. “청진기로 진찰을 해 보니 폐렴이 의심됐어요. 한 달 동안 감기약만 드셨대요. 큰 병원으로 입원하셨는데 폐렴이 맞았고 결국 한 달 만에 돌아가셨죠.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요양원 촉탁의 제도가 없어서 방문진료 의사가 없어 발생한 일이었다.

살림의원 개원 후엔 중증장애인 그룹홈을 시작으로 방문진료를 확대해 왔다.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 1차 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등 관련 수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반 진료비를 받고 왕진을 다녔다. 처음 추 원장 한 명이었으나 지금은 가정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부인과·치과·한의원까지 총 11명의 의사가 있다. 그중 일반의 1명은 방문진료만 담당하며, 추 원장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방문진료에 할애한다.

살림의원 간호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왕진가방. 추혜인 원장은 노트와 청진기를 들고 가 진찰을 하고, 간호사는 각종 처치 용품을 가져간다. 의사와 간호사는 함께, 혹은 따로 긴밀하게 움직인다. 최주연 기자


집에서 예방접종 맞아보셨나요

방문진료 환자들은 대부분 80, 90대의 고령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젊은이도 있고, 특히 정신·발달장애인은 거동이 불편하지 않아도 병원을 거부해 질병 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집에 가서 독감 예방접종을 했을 때 너무 편안했어요. 여기(의원) 와서 맞으실 때는 저희도 힘들고 그분도 힘들고 가족들은 더 힘들었는데요. 많은 의료인이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우니 위험해’라고 하시지만 부작용이 더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발버둥 치지도 않으시고 협조도 잘해 주시니까요.”

얼굴을 아는 의사가 생기면 발달장애인도 거부감 없이 병원에 오게 된다. “친해져서 지금은 병원에 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얼굴을 아는 의사를 만나러 가는 거면 병원에 와서도 훨씬 긴장을 덜하시는 거죠. 그분도 병원에 오는 게 무섭고 병원에서의 경험이 항상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을 점점 거부하게 되시는 거니까요.”

왕진 요청 많지만···수요 못 따라가는 현실

추 원장은 경기 고양시, 서울 강서구까지 왕진을 가본 적이 있다. “신청하시는 분들은 최대한 다 나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죠. ‘오늘 바로 와주세요’ 하시는데 바로 갈 수 있는 방문진료 기관은 잘 없어요. 빠르게 갈 수 있는 경우는 일주일 이내에, 밀리거나 그러면 2, 3주 후에 잡힐 수도 있고요.”

멀리서 왕진 요청이 들어오면 그 인근에서 왕진을 하는 의료기관을 연결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방문진료 하는 의료기관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서 근처에 방문진료하는 기관이 있으면 거기로 연결해드리죠. 저희도 그렇게 의뢰를 많이 받고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방문진료를 하는 의료기관(1차 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검색할 수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공모기관(등록기관) 수는 의원 508개, 한의원 1,216개인데 실제로 방문진료 수가를 청구한 기관은 의원 189개, 한의원 441개에 불과했다. 6월부터 349개 의원이 추가로 등록했으나 실제 방문진료를 실시하는 의원은 이보다 적은 것으로 보인다.

추혜인 원장은 “방문진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걷지 못하는 것 외에 굳이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 요양병원에서 욕창이 심해져서 퇴원한 환자,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발달장애인 등이다. 최주연 기자


300명 조합원이 4200명이 되기까지

살림의원의 주인은 출자(5만 원 이상)한 주민들(조합원)이다. 주민들이 병원의 주인이 되면 뭐가 달라질까. “1차 의료에서 주치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의사가 ‘내가 주치의가 되겠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랑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조합원들도 이곳을 주치의 의료기관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세요.” 이미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추 원장은 “환자들이 혹시 (영리를 위한 과잉진료라고) 의심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없이, 주치의는 그분들께 가장 필요한 것을 제안드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 예방 활동’도 한다. “고혈압 예방을 위해서 ‘운동 열심히 하세요’ 이런 말을 의사들이 하지만, 운동모임을 소개해 주고 운동센터에 등록을 하고, 자조모임에서 체크를 하긴 힘들잖아요. 그걸 하고 있어요.”

살림의원에는 건강실천단이 있다. “처음 목표가 100일 동안 250명이 하루 5km씩을 걸으면 지구를 한 바퀴를 걷는다 해서 시작을 했는데, 지금 한 바퀴 반을 더 걷고 두 바퀴째를 향해 가고 있어요.”

조합원은 300명으로 시작해, 현재 4,200명 정도로 늘었다. 누구나 가입 가능하다. 해외 거주자도 가입해 있고 한국에 올 때 이용한다. 수익이 나면 3대3대3대 1의 원칙에 따른다. 30%는 조합원들의 건강증진과 지역 건강 약자 지원에 쓰고, 30%는 직원 복지기금으로 적립한다. 나머지 30%은 법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의무 비율이고, 10%는 특별사업을 위해 모아놓는다.

서울 은평구 살림의원에서 추혜인 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여성운동가 박영숙 선생의 도움으로

추 원장은 의대생일 때부터 의료협동조합을 계획했다. 공과대학을 다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했는데 “성폭력 피해자 입장에서 진료해 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의대에 입학했다. “해바라기센터 같은 거를 혼자 생각하신 거냐”고 물었더니 “맞아요” 하며 웃었다.

“여성주의 병원을 만들어야지 했는데, 보건학을 공부한 선배가 ‘개인의사가 혼자 어떤 가치를 가지고서 그 가치를 실현하는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러 주민이 함께 꿈을 꾸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의료협동조합 모델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왜 은평구였을까. 그가 사무실을 구하고 있었을 때다.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어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박영숙(1932~2013) 이사장이 은평구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여성 단체를 키우는 공간으로 내주었다. “박영숙 선생님이 ‘살림이재단’을 운영하면서 건물에서 나온 수익으로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하고 계셨어요. 그 공간을 여성단체를 인큐베이팅하는 공간으로 내주셔서 사용료를 거의 내지 않고 2년 가까이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살림’은 박영숙 선생의 평생 과업이 담긴 말로, 정치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운동을 뜻한다. ‘살림의원’의 어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 원장은 “처음에 사무실을 보고 들어왔던 건데, 지역사회 여러 단체분들을 만나보니 너무 좋아서 여기 터를 내고 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여성계 대모였던 박 전 이사장은 의료협동조합을 준비하던 추 원장에게 사무실을 내주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정폭력 피해자, 성소수자들이 기댈 곳

추 원장이 개원하기 전에 그가 꿈꾸던 해바라기센터들이 생겼다. “전공의 때 거기 파견 나가서 일을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주의 병원은 필요하다. 살림의원은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와 협약을 맺고 주치의 진료를 한다. “보통 가정폭력 피해자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건강보험증 번호를 같이 쓰시는데, 그걸 쓰면 쉼터가 노출될 수 있잖아요. 임시사회보장번호를 받을 때까지 진료를 못 받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쉼터에 들어오는 초반에 진료할 게 많아요. 비보험으로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시기에 저희가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어요.”

성소수자 진료도 개원 때부터 해 왔다. “고혈압·당뇨 관리할 때 자신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라거나, 부인과 진료 때도 (동성애자임을) 편히 말씀하세요. 저희는 더 필요한 검사나 예방접종을 추천할 수 있죠.”

살림의원은 성중립 화장실이 있을 정도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원이다. 추 원장은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치료에 대해 “외국 논문 보면서 독학했어요. 외국 가이드라인 보면서”라고 말했다. 그나마 2021년부터 호르몬 치료를 하는 의사들, 성전환 수술을 하는 의사들, 진단하는 정신과 상담 의사들이 모여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를 만들어 교류하고 있다.

그해 서울대 의대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의료 강좌가 개설됐는데, 서울대병원 의료진만으로 강사를 꾸리기 어려워 알음알음 모인 강사군들이 모임을 이어가다 아예 연구회를 만든 것이다. 강좌를 개설한 윤현배 서울대 의대 교수는 살림의원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추 원장은 “올해 서울대 의대 성소수자 강좌는 다른 대학 의대·간호대·치대·한의대 학생들도 수강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고 전했다. 그는 강조했다. “일단 건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살림의원의 성중립 화장실. 살림의원 제공


“의대 정원 늘려야죠, 간호법도 찬성해요”

추 원장에게 개선되었으면 싶은 의료 정책을 물어봤다. “진료를 짧게 볼 수밖에 없으면 검사를 많이 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불필요한 검사나 의료비 지출을 줄이려면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돼야 하고, 진료시간 대비 진료 수가가 달라지는 제도를 시범적으로라도 했으면 합니다.” 정신과는 시간당 상담 수가가 따로 있지만, 다른 과목은 초진과 재진 수가로만 나뉜다.

의료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의대 정원 확대, 간호법 등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 “의사 늘리는 건 필요하죠. 1차 의료만 봐도 의사 숫자가 진짜 너무 부족하거든요. 얼마나 많이 늘려야 할지는 정책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많이 필요하죠. 고령화가 되면 될수록 많이 필요하고, 1차 의료도 정말 필수적으로 늘어나야 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제정이 좌절된 간호법에 대해서도 “당연히 (간호사분들이) 지역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취지에 동감하고 지지한다”고 말했다. 추 원장은 의사단체의 간호법 반대 이유에 대해서 “간호사업소를 독립적으로 개업하고 운영을 할 것이라고 지레 걱정을 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 내용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저도 사실 왜 그렇게 너무 반대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방문진료에서 간호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간호사 선생님들 없이 저 혼자 방문진료를 다녔던 때 욕창이나 관 교체를 모두 제가 해야 하니까 힘들고 환자분들을 많이 보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방문간호를 하시는 간호사 선생님 3분이랑 같이 일하고 있거든요. 훨씬 더 일을 잘 나눠서 할 수 있고 같이 나가기도 하지만 따로 나가기도 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고요. 진짜 팀으로 병동에서 일을 하는 것처럼 일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방문진료 가방을 멘 추혜인 원장. 그와 동행하곤 하는 간호사가 처치용품을 담아 놓은 가방이다. 최주연 기자


“의료협동조합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많이 벌고 죽도록 일하는 직업, 대한민국 의사의 모습이다. 추 원장은 갈수록 심화하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사회가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힘드니까 안정적으로 보장된 사회적 지위나 수익을 생각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살림의원은 다르다. “일반봉직 의사들만큼 (연봉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급여가 조금 적어도 여기에서 좀 더 의사다운 진료를 하고, 주 4일 주 5일 혹은 주 20시간 근무를 하면서 삶의 균형과 가치를 찾고 싶은 그런 분들이 오세요.”

주민들이 주인인 병원은 의사들에게도 낯설다. 그는 “전국에 의료협동조합이 30개 정도고 서로 교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들이 협동조합 틀을 잘 몰라서 선택을 못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출받아서 병원 만들거나 그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세운 병원에 봉직의사로 취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봉직의는 젊은 분들을 뽑아요. 의료협동조합은 나이가 들어도 봉직의사로 일을 할 수 있고, 주민들과 주치의 관계를 맺어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죠. 주 40시간 이상은 일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방문진료도 하고 연구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려면 의사들의 진료시간이 조금 더 줄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사가, 동네의원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추 원장과 살림의원의 활동에서 그 지평의 확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진희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