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물주는 괜찮을까

입력
2023.07.24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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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근무 늘며 해외 오피스 공실률 급등
한국 업무ㆍ상업용 빌딩도 안심할 수 없어
코로나19로 ‘조물주 위 건물주’ 믿음 위태

미래에셋이 투자했다가 원금 대부분을 잃게 된 홍콩의 골딘 파이낸셜 글로벌 빌딩(오른쪽).

미래에셋이 투자했다가 원금 대부분을 잃게 된 홍콩의 골딘 파이낸셜 글로벌 빌딩(오른쪽).

전 세계 주요 도시 업무ㆍ상업용 빌딩 가격 폭락 사태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미래에셋증권이 4년 전 홍콩 대형 빌딩에 빌려준 2,800억 원 중 90% 가까이를 날리게 된 것이다. 임대료 수익이 급락해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자 선순위 대출자들이 싼값에 빌딩을 팔면서, 최대 연 7.5%의 고금리를 노리고 중순위(메자닌)로 빌려줬던 미래에셋이 손실을 떠안게 됐다. 2,800억 원 중 미래에셋 자금은 300억 원이고, 나머지는 국내 금융기관, 연기금 등이 투자한 것이다. 저금리가 계속되던 2017년께부터 금리가 높은 해외 부동산 메자닌 투자가 금융기관과 연기금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런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는 지난해 말 기준 7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올해부터 만기가 돌아와 감독 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세계 주요 도시 업무ㆍ상업용 빌딩의 위기는 공실률이 치솟기 때문이다. 미국 글로벌 부동산 기업 CBRE 보고서에 따르면 3월 기준 전 세계 오피스 공실률은 12.9%에 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13.1%와 비슷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공실률이 단기간 내 회복될 가능성도 작다는 점이다. 최근 미 컨설팅사 매킨지는 전 세계 주요 8개 도시를 조사해 2030년까지 오피스 공실률이 2019년보다 13~38% 높게 유지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원격 근무가 확산되면서, 그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쯤 되면 한국 건물주들도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직 목 좋은 도심 대형 빌딩은 변화의 무풍지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6.2%로 자연 공실률 5%에 근접한 수준이다. 대형 빌딩으로 좁히면 더 낮아져 사무실 구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CBRE도 한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업무용 빌딩 투자 대상 지역으로 꼽았다. 그런데 제시한 근거가 눈길을 끈다. 한국 사무직 근무 형태 중 상시 사무실 근무(이하 상시 근무)가 49%로 다른 나라에 비해 단연 높아 수요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상시 근무 비중이 7%인 반면, 원격 근무는 22%나 됐다. 유럽은 상시 근무가 2%에 불과했고, 상시ㆍ원격 근무가 반반 수준인 하이브리드 근무가 50%에 달했다. CBRE는 미국과 유럽에서 상시 근무가 줄어드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들이 자유로운 근무 환경 선호도가 높아진 우수 인력을 붙잡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인재의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는 추세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상시 근무가 줄어들 것이다. 현재 도심 업무용 빌딩 호황이 그리 길지 않을지 모른다.

이미 코로나19 충격을 받는 부동산도 있다. 중산층 최고의 노후 대책으로 손꼽혔던 상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분기 전국 집합상가(대형 상업시설 내 구분상가) 투자수익률은 연 0.84%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2년 이후 가장 낮았다. 지역 상가 공실률은 10%를 넘어섰다. 지방에서는 이미 분양가의 반값 상가가 대세로 자리 잡았고, 수도권 신도시에서도 분양가의 절반 이하로 통째로 팔리는 상가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상가의 몰락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감소 등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비 경로가 동네 상가에서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도 계속될 줄 알았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믿음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건물주만이 아니라, ‘부동산은 안전자산’이란 전제로 설계된 투자상품, 노후 자금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이다. 이에 대한 위험 분산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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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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