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영원히 미궁으로 빠지나

입력
2023.07.26 17:00
수정
2023.07.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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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출신 살인 혐의 두고 재판 반전에 반전
1심 무죄, 2심 징역 유죄, 3심 무죄 파기환송
4번째 재판에서 무죄… "증거 인정 어려워"

제주법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주법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주의 대표적 장기미제 사건으로 꼽히는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사건 공범으로 지목된 피고인에 대해 사실상 무죄가 확정되면서다.

광주고법 제주형사3부(부장 이재신)는 26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57)씨에 대한 파기환송심(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후 네 번째로 여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 측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살인의 고의나 공모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 무죄, 2심 유죄, 3심(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 환송에 이른 네 번째 법원 선고다.

제주의 폭력범죄단체 ‘유탁파’의 행동대장급 조직원이었던 김씨는 1999년 8월 또는 9월 누군가(성명불상)로부터 현금 3,000만 원과 함께 “골치 아픈 일이 있어 이승용(당시 44세) 변호사를 손 좀 봐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는 2, 3개월간 동갑내기 조직원인 손모(2014년 사망)씨와 차량으로 이 변호사를 미행하고 흉기를 고르는 등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모의했다. 손씨는 같은 해 11월 5일 오전 제주시 노상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이 변호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이후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으나 두 사람이 검거되지 않으면서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 김씨가 2020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김씨는 “이 변호사에 대한 상해를 사주받고 손씨와 함께 범행을 했지만, 일이 잘못돼 사망했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했다. 손씨는 2014년 이미 숨진 뒤였다. 김씨는 경찰에서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방송에 출연했다”고 말했지만, 그간의 잦은 해외 체류 탓에 공소시효는 소멸되지 않았다. 김씨는 이후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살인 및 SBS PD를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재판 과정도 1심 무죄, 2심 유죄(징역 12년형)로 반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씨의 제보 진술은 주요한 부분에 관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고, 나머지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위한 추가 증거가 충분히 제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해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어 이날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춰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검찰이 재상고를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대법원 판단을 한 번 받은 뒤라 추가 증거 제출 없이는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검찰이 재상고하지 않으면 살인 혐의 무죄 판결이 확정될 예정이다. 다만, 김씨의 협박 혐의는 모든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형이 이미 확정된 상태다.

김씨는 이날 판결과 관련해 “주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과장해 말한 잘못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유족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방송사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는 이유로 나를 범인으로 몰았다"면서 "명예훼손과 위자료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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